우생학의 발달

 1  우생학의 발달-1
 2  우생학의 발달-2
 3  우생학의 발달-3
 4  우생학의 발달-4
 5  우생학의 발달-5
 6  우생학의 발달-6
 7  우생학의 발달-7
 8  우생학의 발달-8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우생학의 발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우생학의 발달
지난 2월에 뉴스데스크를 통해서 신체적 힘이 정치적 의사결정, 특히 정치적 갈등의 상황에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관한 보도가 방송되었다. (참고로 이 연구는 Psychological Science라는 학술지에 게재될 예정이지만 정식 출판되지 않았고, 현재도 연구중이라 한다.) 주요 저자인 Michael Bang Petersen 등에 의하면, 정치적 의사결정에 대해 논하고 있는 현재의 연구들 중 대부분은 신체적 요소를 무시한다고 한다. 대신 이들은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접근을 통해 정치적 갈등 현상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되었다는 것이 논문의 요지이며, 연구자들에 의하면 신체적 요소가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들이 이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이두근의 굵기는 바로 그러한 요소에 해당된다고 한다.
보도가 나간 직후 인터넷을 살펴보면 이 보도에 대해서 우생학이라고 비판하는 의견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 나치까지 연결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이에 대체 우생학이란 어떤 학문이며, 왜 문제로 지적받는지 알아보려 한다.
우생학이란 무엇일까? 영어로는 eugenics이며, 이는 well-born, 즉 좋은 종자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파생되었다. 우생학은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 여러 가지 조건을 연구하는 학문이자 인간 또는 사회적 개입에 의해 인간의 유전형질을 개량하려는 이론이며, 이를 통해 후대의 유전학, 인류학, 민족학, 통계학 등 여러 학문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우생학의 목적은 우수 또는 건전한 소질을 가진 인구의 증가를 꾀하고 열등한 인구의 증가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산아제한, 인종개량, 유전자 조작 등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런 설명을 듣자마자 우리의 머릿속에는 유대인 학살과 홀로코스트가 떠오를 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과연 2차대전당시 획기적으로 떠올린 나쁜 계획일까? 혹시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던 생각은 아닐까?
우생학의 뿌리는 아주 먼 옛날부터 시작했다. 고대 스파르타를 그리스에서 가장 힘 있는 군사 국가로 만든 왕이 있었다. 스파르타의 특이한 제도의 대부분을 제정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생물연대를 알 수 없는 전설적인 인물이 바로 리쿠르고스이다. 그의 이름을 따라 리쿠르고스법이 제정되었으며, 학계에서는 그가 만든 리쿠르고스 법을 통해 스파르타는 강성한 스파르타인을 양성한 것을 정설로 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의 생각도 우생학의 토대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만성적 허약과 방종에 의해 질병에 걸린 인간들은 의학적 치료의 대상이 아니며, 도덕적 타락은 추방이나 처형의 이유가 되고, 우수한 자손의 번식을 통한 도시 국가의 이상 실현을 위해 우수한 계급의 현명한 결혼을 주장했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역시 시민계급을 중심으로 이상적 공동체를 설계해야 하며, 하층 계급의 다산으로 인한 과잉 인구는 빈곤이나 범죄, 혁명의 중심지로 자라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하층계급의 출산율은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르네상스기에도 이러한 생각을 가진 학자들은 존재했고, 르네상스 후기의 이탈리아 철학자 토마스 캄파넬라 역시 그의 저서 태양의 도시에서 자신의 이상에 대해 밝히고 있다
시대는 점점 발전했고,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19세기에는 과학혁명의 시대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고, 더 이상 인간이 사는 곳이 가장 타락한 곳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가장 타락한 곳에서 지식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들은 이제 한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중심주의의 위기는 인간의 지적 능력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함축하게 되고, 따라서 새로운 지식이 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전망과 기회가 과학혁명 시기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죠. 신은 인간을 위해서 이 자연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마지막 타격은 19세기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생명체는 끊임없이 변이하며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후대의 자손에게 이어져 축적되며,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가시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 이론은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다른 많은 학문 영역들은 물론 우리들의 일상생활에도 폭넓게 영향을 미쳤다.
허버트 스펜서가 주장한 사회진화론, 사회다윈주의도 그 영향을 받은 이론이다. 이는 다윈이 주장한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의 법칙이 주(主)가 된 생물학적 진화론을 이용하여 사회발전을 설명하려고 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스펜서는 사회도 생물계와 마찬가지로 단순하고 동질적인 것에서 복잡하고 이질적인 것으로 발전해 간다고 생각하였으며 사회의 발전에 대하여 낙관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