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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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찬욱 감독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박찬욱 감독
인간에게 가장 풍부하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은 사랑과 다른 사람에게 대한 불만이나 질투, 같은 감정이다. 우리는 사소한 게임에서라도 승부에서 지고나면 흔히 ‘복수전’이라는 단어를 쓰며 다시 게임을 한다. 복수는 이것처럼 우리 생활에 그리 큰 감정으로 쓰이지만 그 단어 안에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그 단어를 알게 모르게 생활 속에서 쓰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것, 즉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지키고자 하며 그것이 상처를 입거나 없어져 버리면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은 모두 자신들의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거나 다쳤다. 사람에게 기본적인 욕구 가운데 복수라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식욕처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질투, 분노, 증오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박찬욱의 복수 3부작에는 여러 가지 사람의 복수하는 방식이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사람들은 죄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악인이여서 살인을 하고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식이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죄의식으로 인해 사람의 성격이 변하는 것이고 오직 복수 외에는 다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복수심을 가짐으로써 지금의 아픔이나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복수심을 기르고 복수심을 기르면서 그 사람은 예전의 자신과 멀어져 가는 것이다. 오직 복수심만으로 사는 것처럼 말이다. 또 복수심을 가지면 때에 따라 착해 질 수도 있고 뻔뻔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자신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복수심을 숨긴 체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속이는 것뿐이다.
영화의 결말이 좋게 끝나는 것은 없다. 복수에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했다는 즐거움이나 마음속의 후련함 들이 없다. 그것은 복수를 통해서도 자신들의 죄의식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을 이야기 한다. 의 동진은 복수를 성공한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하지만 4명의 사나이들에게 판결문이 가슴에 박힌 체 죽임을 당한다. 역시 복수에 성공한 이우진은 엘리베이터에서 자살을 하며 죽음으로 결말을 맺는다. 도 복수는 성공했지만 그토록 자신이 원하던 구원은 얻지 못한 체 끝을 맺는다. 모든 결말은 복수가 성공했음에도 자신의 죄의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구원의 통로들이 너무 멀리 있음을 느낀다. 의 동진은 팽기사의 아들을 구함으로 거기서 구원을 얻고자 한다. 자신의 딸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살림으로써 자신의 죄의식이 용서가 되고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 그 희망은 예전으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것, 동시에 그에게는 남은 전부인 것이다. 아이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가 왔을 때 그는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끊어 버린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에 아이의 죽음은 이제 그에게 의미가 없다. 그에게는 이제 아이를 통해 생긴 희망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된다. 희망이 사라지고 나자 그 또한 4명의 사나이들에게 죽음을 당한다. 그의 구원을 통로가 사라짐과 동시에(사라짐을 인정하진 않지만) 그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의 이우진 역시 복수가 끝이 나자 자신을 짓누르던 죄의식이 다시 살아난다. 누나의 손을 놓음으로써 그는 누나의 죽음에 일부분 동조한 것이다. 그는 늙은 아이였던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늘 멈춰있는 그는 누나의 죽음에 대해 큰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몰랐던 것이었다. 그때는 단지 무서웠을 것이다. 누나와의 사랑과 임신이 그에게는 두려운 존재였다. 사랑함과 동시에 두려워하는 누나가 죽음으로 우진의 마음의 두려움인 자신을 없애고자 했던 것이다. 그도 그것에 동조했던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의 죄의식은 깊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서 늘 괴로워했던 것이다. 누나의 죽음은 자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책임을 그 사실을 가르쳐주고 소문을 낸 오대수에게 묻는 것이다. 그래서 오대수에 대한 끝없는 복수와 함께 그는 죄의식을 복수심에 담아 오대수에게 전가 시킨 것이다. 영화에서 오대수의 복수는 없다. 그는 이우진의 복수에 대한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이우진은 바위만큼의 죄의식을 모래알만한 오대수의 실수에 넘겨 버린 것이다. 자신의 죄의식을 안고 살아갔던 오대수가 무너지자 그는 자신의 죄의식을 다시 돌려받았고 그도 무너지고 말았다. 오대수는 자신의 딸을 사랑하는 것을 알자 이우진에게 구걸을 한다. 그 사실에 대해 너무 큰 죄의식을 가지며 자신의 달에게 만큼은 알리지 않기를 원한다. 그것을 본 이우진은 웃는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는 오대수가 자신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기를 원했다. 오대수는 자신의 사랑에 떳떳하기를 원했다. 그 상대가 자신의 딸이어도 흔들리지 않기를 원했다. 누나의 자살을 동조했던 것처럼, 오대수는 자신의 딸에게 이것을 숨기고 비밀로 할 것을 구걸했던 것이다. 그의 비참한 모습에 그는 웃음이 났던 것이다. 그 역시 자신과 같은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통쾌한 마음과 함께 그의 사랑이 자신과 같음에 허무해진 것이다. 그는 오대수의 딸을 숨어서 지켜주면서 자시이 누나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을 해주었다. 자신의 기억 속 누나의 나이보다 훨씬 더 넘게 키운 ‘올드’가 된 미도를 보며 그는 어떤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오대수에게 복수를 하고 걸어나가는 장면에서 ‘우린 다 알고도 사랑했어요.’라고 말한다. 그는 오대수에게 복수함으로써 끝날 것 같던, 아니 조금이나마 작아져 돌아오길 원했던 죄의식은 같은 크기로 다시 돌아왔고 이제 그는 더 이상 그 죄의식에서 구원을 찾는 것보다 자신의 고등학교시절로 돌아가 누나와 함께 죽음을 택한다. 어쩌면 그 죽음이 이우진 자신에게는 구원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뿐, 진정한 구원이 아니다. 에서도 금자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그녀는 복수를 한 뒤 내면의 원모와 만나게 된다. 그녀는 용서를 빌려고 하지만 어른인 된 원모는 그녀의 입을 막는다. 그녀는 스스로의 마음에서는 진정 속죄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내면속에서 그런 장면이 그려지는 것이다. “널 죽인 백선생을 내가 죽였어, 그러니까 나를 용서해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금자의 내면에는 원모는 자신 혼자가 아닌 다른 죽은 아이들의 죄의식과 합쳐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감옥에 있을 때 백선생이 죽였던 아이들에게까지도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원모는 그녀의 죄의식의 형상화이다. 그렇게 된 원모는 많이 자라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속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그때마다 죄의식도 커갔을 것이다. 복수는 하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원모에게 용서를 받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죄의식을 용서받지 못한 채 그녀의 딸을 만난다. 그녀는 두부모양의 하얀 케이크를 만들어 제니에게 준다. 제니는 금자에게 손에 케이크를 찍어 먹어보라고 주지만 차마 먹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두부에 묻고 절규하듯 구원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해 힘들어 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자기 스스로에게 구원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복수를 하는 가운데서도 복수 뒤에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