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어린이와 선후배 및 상사와 부하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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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어른과 어린이와 선후배 및 상사와 부하의 관계
가. 서론
인간은 너와 내가 어울려 삶을 살아간다. 혼자는 삶을 영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자들은 인간을 군서(群棲)동물이니 사회적 동물이라고들 한다. 너와 내가 어울리게 되면 자연히 그 사이에는 관계라는 질서가 생기게 마련이다. 너와 나의 관계, 곧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정지어 주는 이론이 나오게 되는 데, 유교에서는 이를 덕목이라고도 부르며 도덕과 윤리의식이라고도 명명한다.
현대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나는 예의 정신의 결여이다.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선배와 후배의 관계를 포함한 많은 사회관계들이 관계의 혼란과 악화를 경험하고 있다.
나. 예의 보편적 시각
예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유교 윤리 규범 중의 하나이다. 좀 더 부연하면, 종교적인 의의와 제도의 의의를 함축하고 있다. 또, 자율적이라는 면에서 법과 구별되기도 한다. 사마천의 『사기』의 「태사공자서」편의 "예는 아직 그러하기 이전에 금하는 것이고, 법은 이 그러한 후에 적용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점을 설명한 것이다.
예의 발생은 원래 무속(巫俗)중의 금기(禁忌)에서 비롯되었다. 신성(神聖)과 부정(不淨)을 가려 행동하려는 데서 예가 비롯되었다. 이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예는 일정한 생활 태도를 지향하는 가치관의 산물이다. 유교에서 예를 가리켜 천리(天理)의 절목 또는 인간사의 의칙(儀則)이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가치관이 양심에 의거하여 자율적으로 교양의 차원에서 행하여지는 데에 예의 특성이 있다. 즉, 이 점이 같은 규범 법칙인 법과 다른 점이다. 가치관의 소산이 예이므로, 예 사이의 충돌마찰 현상의 여부는 곧 가치관이 얼마나 서로 다른가에 달린 것이다. 시초의 예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형식으로 비롯된 것이지만, 천명의 정치를 하면서 이러한 경외지심은 예를 정치적 법제, 사회적 전례(典禮), 윤리적 예의로 실천하도록 확대되어 갔다. 법제는 곧 예요 예악정치를 이상으로 하는 유교에서 볼 때, 왕도 실현에 매우 중요한 일로 생각되어 왔다. 사회적 전례로서는 [예기]에 기록된 바 길흉군빈가의 오례라든가 관혼상제의 사례 등을 열거할 수 있다. 보통 말하는 예의 의식(儀式)은 주로 이 사회적 전례를 가리킨다. 풍속과 관습 등이 여기에 속한다. 윤리적 예의란 오상(五常)의 예이다. 그러나 윤리적 예의라고 하더라도, 정치적 법제와 사회적 전례와 전연 독립된 별종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의식이나 정치적 법제 내에 윤리적 의의를 인정해서 이것을 윤리적 예의라고 한다.
예라고 하는 것인 인간의 행위 수양 양식으로, 인류의 행위 규범이며 생활 습관의 규범이다. 인간의 행위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인륜을 밝히는 것이 예학의 과제이며, 예제 속 의리는 명인륜정상하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예는, 의식주나 기물들의 제작에 있어서 규범을 가리키는 것이요, 사회생활의 혼인, 가족 제도, 사회 조직 등에 있어서, 규범이며, 예속은 일종의 문화 현상인 것이다. 예의 본질은 바로 인간 본질의 문제이며, 예의 형식은 인간 행위의 규범이라 할 것이다.
원래예란 바른 도리, 마땅히 행하여야 할 원리, 또는 선으로서의 덕목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의 의미상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명분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특징으로 예는, 도덕 이외의 어떠한 종교법률 등의 성질이 부각된다고 하더라도, 형식주의 성향이 짙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고도로 세련된 예일수록 단순한 습속 이상의 합리적 근거를 지닌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 조화(공동체)로서의 예의 역할과 필요성
예(禮)’자체 내에 조절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자는 “공경도 예로 조절되지 않으면 단순한 수고로움이 될 뿐이며, 신중함도 예로 조절되지 않으면 단순한 소심증이 된다. 용기도 예가 조절하지 않으면 단순한 난폭함이 되며 솔직함도 예가 조절하지 않으면 단지 몰염치가 될뿐이다.” 라고 하였다. ‘예(禮)’의 기능 내에 평형감각으로서의 과불급(過不及)의 조절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禮)’를 갖췄다고 한다면 그것은 예의범절이나 사회적 질서를 지킨다는 뜻도 되지만 중용적 평형감각도 갖췄다는 의미도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禮)’를 중시하고 ‘인(仁)’을 존중하였던 우리문화 속에서는 한 면만 취하고 다른 한 면을 버리는 것은 지양되었다. 언제나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를 취하며, 양자가 화합하되 동화하지 않는모습을 견지하였다. ‘화(和)’란 ‘상응(相應)’에서 시작해서 ‘응화(應和)’‘상화(相和)’ ‘교화(交和)’ 등의 다양한 형태로 설명할 수 있지만, 둘 이상의 음식재료를 섞고 조합하면서 각각의 맛을 잃지 않는 것을 말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조화는 “독특한 재료의 자기 완결성(integrity)과는 다른 거대한 전체에 통합(integration)을 의미한다.”
『중용』 에서 말하는 “중화(中和)가 잘 이루어질 때, 천지가 제자리를 유지하고 만물이 번창한다.” 는 말을 여기에 대입해 본다면 그 의미는 더욱 살아날 것 같다. ‘중화’란 음식재료가 각각의 맛을 잃지 않고 섞여서 하나의 맛을 이루어 내듯, 균형과 초점이 유지되면서도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논리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꾀한 것이 ‘천인합일(天人合一)’이며, 인간과 인간의 조화를 꾀한 것이 ‘예(禮)’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禮)’는 조화의 필수 요목이며 공동체 조화를 위한 개인의 헌신적 매개라 할 수 있다.
예의 시행에는 조화를 가장 귀하게 여긴다. 선왕의 도도 이 조화를 가장 아름답게 여겼다.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나 조화만 가지고) 행하여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조화만 알아서 조화하려고만하고 예로서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행해질 수 없는 것이다. 조화를 추구하는데, ‘예(禮)’가 필수불가결한 조건임을 말한 내용이다. 공동체 조화를 위해서는 ‘예(禮)’라고 하는 형식이 필수라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 공동체와 공동체, 나아가 인간과 신의 소통과 친화의 핵심적 요소로 ‘예(禮)’가 절대적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과 자연을 대립의 양단(兩端)으로 보면서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았던 서양적 이분법의 논리와 다르며, 또 도전과 응전이라는 논리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경쟁을 부축이며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윤리를 탄생시킨 서양과는 다른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