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 평전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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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평전 감상문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한용운
-만해 한용운 평전
만해 한용운. 그는 누구인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지 한국의 시인, 불교 승려, 작가이자 독립 운동가이다. content bodyContent 3·1 만세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이다. 그리고 body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로서 유일하게 변절하지 않은 애국지사다.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집도 조선총독부 반대 방향인 북향으로 지었고, 식량 배급도 거부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또한, 친일로 변절한 최남선이 한용운과 가까운 사이임을 자처하자, 한용운은 ‘최남선’이라는 사람은 (마음 속으로)이미 장례를 치러서 당신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다 아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 한 대목을 읽자면 가장 유명한 부분인 wrap container 임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임은 갔습니다. 아마 이 부분일 것이다. 잘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만해 한용운 선생의 곳곳에 숨어있는 유명함.
내가 만해 한용운 평전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렇게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국민을 위해서, 조국을 위해서 등 이렇게 힘이 넘쳐 날 수도 있구나 라고.
사실 평전이라는 것이 읽는 것이 지루할 수도 있는데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님의 침묵’이라는 시 탓이였을까. 많이 낯설지는 않았다.
인상깊은 부분은 ‘그의 삶은 한 군데도 논 흔적이 없게 된다. 그의 치열한 자기 연소의 에너지는 그것에 어떤 제약이나 심리의 내약에 부딪히는 한계를 만나면 바로 그 한계 옆에 있는 일의 대상을 찾아서 힘이 퍼부어졌다. 그는 삶의 백열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는 삶의 대장간이었다. 쇠가 식어 본 일이 없다. 거의 비인간적일 만큼 그는 어떤 공동의 무위와 유희를 배척하면서 무엇이고 붙들고 늘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폭염하의 한 개미와 같았다.라는 부분이다. 사실 많이 낯설지는 않았다고 했던 평전이지만 님의 침묵 부분을 제외하면 낯설었다. 많이.
그가 어떤 일을 했었는지, 또한 어떤 일을 당하며 어떤 지혜로움으로 일을 헤쳐나갔는 지 등 거의 정말 만해 한용운 선생, 님의 침묵 이 두가지만 알았을 뿐 아는 게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특히 역사과목에 정말 취약한 나같은 사람은.
한용운 66세의 만년 10년은 그의 최초의 가족적 안정 때문에 이제까지의 한용운에 대한 정태의 변환을 이룬다. 그의 화산은 죽었다. 그는 휴화산이었다가 사화산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를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기 위하여 그는 사화산으로부터 화산의 환영을 떠올리는 열정과 편집을 아로새기는 일을 때때로 보여준 것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궁핍한 시대에 궁핍한 농촌에서 태어나서 그의 현란한 행위의 궤적에도 불구하고 늘 궁핍한 삶이 그를 따라다녔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아내 숙원과 딸 영숙만을 사랑했다. 그의 대승적 이념은 그의 고향 또는 그곳에 있는 헤어진 처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한용운은 그 점에 있어서는 잔인한 바 있다.
아무튼 한용운 만년의 행복은 그에게 필요한 것이었으며, 그것이 없었다면 그에게 그와 비슷한 다른 종류의 행복이라도 증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냐면 그에게는 그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그의 궁핍과 불행의 양이 너무 힘겨운 것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으로는 만해 한용운의 삶은 참 비극적이었던 것 같다. 아마 그 시대가 비극적인 시대여서 그런것일까.
다시 생각해봐도 이와 같은 비극적인 시대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꿋꿋하게 지켜가는 굳은 태도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