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앤디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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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피카소와 앤디워홀
피카소의 이야기
어린 시절과 청년기(1881~1901)
“나는 말도 하기 전부터 그림을 그렸지만, 어린 아이들이 그리는 식으로는 그린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미술 선생님이셨는데, 아마도 아버지께서 나를 일찌감치 미술로 이끌었던 것 같다.”
피카소의 아버지 호세 루이스 블라스코는 재능 없는 화가였다. 그러나 피카소 전기 작가로 가장 널리 알려진 롤런드 펜로즈는 피카소 부계 혈통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헌신과 집요함, 용기, 포용력 있는 예술관, 독실한 종교적 성향 등은 피카소 가계 전반에 나타난다.”
피카소의 아버지는 피카소가 예술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해준 최초의 인물이지만, 사실 아들의 예술적 성장보다는 성적 향상에 힘썼다. 그러나 피카소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반면 그림 그리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어린 피카소에게 그림은 자기를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표현 수단이었다.
피카소의 첫 모델은 아버지였다. 그는 이미 열세 살에 아버지의 수준까지 도달했다. 자신이 그린 그림에 비둘기의 발을 채워 넣은 아들의 그림을 보고는 자신의 화구를 모두 피카소에게 줘버렸다.
“미술은 음악과 달리 신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미술에서 아이가 천재적 재능을 발휘한다고 해봐야 아이일 때만 그럴 따름이다. 세월이 지나가면 어릴 적 재능은 사라져버린다. 그러다가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진짜 화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어릴 때 이런 재능이 없었다. 내 그림에는 아이다운 서툰 선이며 순진성이 없었다. 나는 아이 단계를 거치지 않은 셈이었다. 나는 아이일 때 벌써 아카데미적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는 한마디로 신동이었다. 미술학교를 채 졸업하기도 전에 피카소는 이미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주목받는 화가였다. 1895~1896년에 그린 는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가장 중요한 전시회에 전시되었다.
그는 성스럽고 역사적인 장면보다는 일상적이지만 함축적인 내용이 담긴 장면을 주제로 삼았다. 종교 행사를 배경으로 삼긴 했지만, 그것은 가족 이야기를 담기 위한 빌미였다. 이처럼 주제는 전통 회화적이었지만, 그의 그림 기법은 전혀 전통적이지 않은 사실주의적 기법이었다. 물론 피카소는 곧 이와 같은 기교적인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난다.
“예술은 전복적이다. 예술이 공식적인 것이 되고 모두에게 개방된다면, 또 다른 아카데미즘일 것이다.”
참고문헌

파블로 피카소 (인고 발터 지음, 장재곤 옮김) - 마로니에북스
거울을 가진 마술사의 신화 앤디워홀 (강홍구 지음) - 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