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답사] 강화도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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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강화도답사] 강화도를 다녀와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개관
2. 강화도의 역사
3. 가는편
4. 특산품
5. 답사지
1) 보문사
2) 갑곶진
3) 선원사지
4) 광성보
5) 초지진
6) 전등사
7) 이건창 생가
8) 마니산 참성단
9) 부근리 고인돌
10) 연무당
11) 고려궁지
12) 외규장각
13) 용흥궁
14) 덕포진
15) 갑곶 돈대
16) 강화읍성
17) 고려궁터
18) 정수사
본문내용
강화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구석기 시대부터 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적인 선조가 살던 곳에서 발견된 쌍날집게는 약 2만년전의 유물로 추정되고 있으며,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돌도끼, 돌화살촉, 빗살무늬토기 등 마제석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로 접어들어 성읍국가가 형성되면서 강화도는 발전했다고 생각되는데, 그것은 부족장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지석묘가 강화일대에 산재하고 있음에서 알 수 있다.
어떤 돌무덤은 수십 톤에 이르는 거대한 돌로 만들어져 있어 대체 그 돌들을 어디서 옮겨 왔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라고 한다. 강화도 일대에 지석묘군이 발견되었으며, 무문토기등 이 시기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어 강화도는 당시에 하나의 해상 세력으로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서쪽의 요새 강화도는 삼국 시대 때부터 주목받아왔다. 고구려와 백제의 국경으로 해전과 육전의 요충지였고, 고구려는 일찍이 이곳에 '혈구군'을 설치하였다. 또한 중국과 해상?육상 통로가 없었던 신라 역시 자주 이곳을 넘보았던 것이다. 고려 시대를 맞아 또 다른 역사적 국면이 전개되는데, 몽고족의 잦은 침략을 피해 고려 고종은 1231년 서울에서 가까운 섬 강화로 천도를 감행.1270년 고려 원종 11년에 환도하기까지 39년간 6차례에 걸친 몽고의 끈질긴 침입에도 굴하지 않고 줄기찬 항쟁을 계속하였고, 그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려 문화의 정수인 팔만대장경을 만들고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어 상정고금예문 28부를 인출하는 등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고려의 유적지이기도 하다. 당시의 고려 궁터가 강화읍 관청리에 남아 있다. 조선 인조는 1626년 강화를 유수부로 승격시킨다. 이듬해 인조는 정묘호란을 겪으며 이곳으로 피난했고, 후금과의 강화도 조약을 이곳에서 맺는다. 그러나 1636년 병자호란을 당해 강화는 완전히 함락되고 마는 오욕의 역사를 겪는다. 효종은 나라를 잃고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한을 씻고자 북벌계획을 추진하면서 이곳에 진(鎭)과 보(堡)를 설치했다. 군사력 강화는 이후 숙종 때까지 추진되어 12진?보와 53돈 대?9포대가 축조?설치되었다. 이중 현재 복원되었거나 상태가 양호한 전적지는 스물 여덟 곳이다. 근대에 들어서도 1866년에 일어난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의 격전지가 되었으며, 또한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기 위해 제일 먼저 차지한 곳이 강화도로, 1876년 일본 군함이 강화도에 침입한 뒤 맺게 된 강화도 조약은 일본의 조선 점령 서막이 되었다.
한강?예성강?임진강의 3대 하천 어귀에 있으면서 서울의 관문이었던 강화는 이러한 수난에 대항하면서 상처 투성이의 땅이 되었다. 한국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강화도에는 고인돌 등의 선사 시대 유물을 비롯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마니산 참성단, 신미양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초지진 등 다양한 문화 유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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