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기행문] 제주 벚꽃 대잔치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소개의 글
2. 제주의 유채꽃
3. 왕 벚꽃 축제
4. 유채꽃 잔치
5. 말고기
6. 용두암
7. 제주 먹거리
본문내용
1. 제주의 관광가치
항공기에서 내려 제주 공항을 나서면 서울의 복잡한 도심과 달리 갑자기 무성한 야자수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로수를 대신하면서 죽 뻗은 길이 파노라믹하게 펼쳐진다. 이곳부터 앞으로 나가면 멀리 시가지가 시야에 들어오는 대부분이 제주시이다. 3월 하순부터 피기 시작한 유채꽃이 4월을 들어서면서부터 곳곳에 만개해 남국의 땅임을 실감케 한다. 제주시나 제주도나 큰 차별은 없다. 이들이 사용하는 방언도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습성도 바람이 많은 자연환경도 굳이 제주시라해서 비켜가거나 혹은 표준말을 쓰거나 하는 일은 없다. 제주시는 곧 제주도이고 제주도는 곧 제주시이다. 섬전체 50만 명이 조금 넘는 인구가 살지만 제주도의 경제활동, 산업 활동, 교육 등의 중심지가 되는 곳이 제주시이고 제주시는 곧 제주도를 대표한 다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고대의 제주도의 명칭은 "주호", "섭라", "탑모라", "담라", "탁라", "탐라" 등으로 불려져 왔다. 이들 명칭이 의미하는 말은 모두 "섬나라"라는 뜻이다. 제주도의 개벽 설화인 3성 신화에 의하면 태고에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라고 하는 세 신인이 한라산 북쪽 "모흥혈"(현, 삼성혈)이라는 땅 속에서 솟아 나와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다. 이들 세 신인들은 "벽랑국"에서 오곡의 씨앗과 송아지, 망아지 등을 갖고 목함을 타고 제주도 동쪽 해상으로 들어온 세 공주를 맞아 혼례를 올렸다. 이때부터 이들은 오곡의 씨앗으로 농사를 짓고 소와 말을 기르며 살기 시작했다. 제주도가 고씨, 양씨, 부 씨가 많은 까닭은 바로 이런 설화에서 유래되었다. 제주시는 탐라 시조의 개국 영지로 근세에 이르러 삼성혈을 중심으로 한 성내와 중 산간 지대의 자연 부락 25개리를 합쳐 제주군 중면이라 칭하였으며, 서기 1913년 제주도 제주면 으로 개칭되었다. 제주면 은 다시 1931년 제주 읍으로 , 1955년 9월 1일에는 제주시로 승격되어 오늘의 제주시가 되었다. 제주 사람들은 한국의 어느 지역 사람들보다도 근면하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여성의 근로정신과 강인성, 집 안팎의 일을 가리지 않고 종회무진 일을 하는데 서 전승된 것으로 보고 있다.
2. 왕 벚꽃 축제
제주시에는 새 천년을 맞는 왕 벚꽃 축제가 개최된다. 왕벚나무라 하면 여전히 일본의 국화로 각인돼 있지만 최근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제주라는 사실이 여러 가지 이론에 의해 거듭 확인하고 있다. 지난 64년 제주시 봉개동에서 자생 왕벚나무 3그루가 천연기념물 제159호로 지정된 이후 최근까지 관음사와 어리목 일대 지역에서 확인된 것을 포함해 모두 33그루의 자생 왕벚나무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론에 더욱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벚 나무류는 올 벚나무, 산벚나무, 벚나무, 산개벚지나무, 섬개벚나무, 이스라지, 귀룽나무, 사옥 등이 알려지고 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벚 나무류를 '아왹', '먹사오기' 등 이라고 하여 매우 귀중한 목재로 취급하여 가구재, 건축재 등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한라산에 자라는 것이 다른 수종에 비하여 많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
제주의 관광 가치, 왕 벚꽃 축제, 유채꽃 잔치, 말고기, 용두암 제주 먹거리등에 관련하여 작성한 기행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