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학] 문화혁명과 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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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학] 문화혁명과 중국의 역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문화대혁명의 배경
1.해서파관 비판
2. 문예비판

Ⅲ. 문화대혁명
1. 문혁의 시대적 배경
2. 문화대혁명의 시작
1) 문예비판의 확대
2) 5.16 통지
3) 북경대학의 대자보
4) 홍위병 운동의 격발
5) 탈권투쟁

Ⅳ. 후계자문제와 실용주의 노선으로의 회귀
1. 임표사건
2. 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
3. 천안문 사건
4. 사인방의 숙청과 화국봉체제의 등장

Ⅴ. 문화대혁명의 성격

Ⅵ. 문화혁명후의 중국의 역사의 흐름
1. 순환론적 입장에서 본 중국역사의 흐름
2. 등소평원정
① 80년대 보혁구조: 진운 vs 호요방
② 90년대 등원정의 대리자: 강택민, 이붕 그리고 technocrat.

3. 등소평사후의 중국
1) 우선 군부의 중요성을 들 수 있다.
2) 다음으로 중국정치에서 보여지고 있는 ‘관계’에 대한 것이다.
3) 현재 일부에서는 정치문제와는 별개로 경제문제를 보는 경향이 있다.

Ⅵ. 문화대혁명의 교훈

참고자료









본문내용
Ⅰ. 문화대혁명의 배경
1.해서파관 비판
문혁의 배경에는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계급투쟁론과 권력에 대한 탈권투쟁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중국 역사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엄청난 재앙만 가져다 준 것 같다. 중국은 1953년에 시작한 제1차 5개년경제계획에서 농촌지역은 오히려 희생을 강요 받았고 또 소련과의 불화로 인하여 경제건설에 문제점을 낳았다. 1958년이 되어 모택동은 다시 한번 자력갱생의 대약진운동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잘살아 보자고 시작한 대약진운동이 3년간에 걸쳐서 오히려 대실패를 가져와 인민을 기아에 허덕이게 만들었다. 결국 경제건설에는 이를 조정해야 하는 조정국면을 갖게 되고 이에 모택동은 그 책임을 지고 국가주석의 자리를 유소기에게 넘겨주고 제2선으로 물러났다. 권좌를 물려 주어야 하고 정책방향도 조정국면이라는 수정주의 쪽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모택동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파와 유소기, 등소평을 중심으로 하는 실권파가 형성되어 정치상에 이중구조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한편 대약진운동이 실패하였을 때 당중앙회의에서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팽덕회는 그침없이 모택동에게 비판을 가하였다. 모택동에게 그 책임을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팽덕회는 오히려 모택동 수구세력에게 밀려 모든 직책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말하자면 실권파의 세력이 등장하면서 과감하게 모택동에게 도전하면서 모택동을 공격하고 비판을 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대신 모택동은 유소기에게 넘겨진 권력을 되찾기 위하여 또다시 새로운 정풍운동을 일으켜야 했을 것이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팽덕회가 모택동에게 공격의 화살을 퍼붓고 있을 당시, 유소기와 등소평과 같은 조정국면의 정책을 지지하던 실권파 지식인들도 나름대로 문예활동을 하면서 유소기를 지지하고 모택동을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2. 문예비판
당시 북경시의 부시장이면서 역사학자이었던 오함은 경극의 희극본인 이라는 제목의 희곡을 썼다.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명대 말기의 황제인 가정제가 포악하고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자 호부주사였던 해서가 정치와 인민의 고통을 고려하여 가정제에게 직접 정사를 잘 살펴달라고 상소문을 올렸다. 그의 글속에는 지주들이 수탈한 토지는 반드시 일반백성에게로 돌려 주어야 하며 군주의 전제주의적 독재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참고문헌
김상협. 「모택동사상」. 서울:일조각, 1976
※김하룡. 「중국정치론」. 서울:박영사, 1984.
조영명. 「중국현대사의 재조명」. 서울:온누리, 1985.
중국공산당 중앙문헌연구실 편/허원 역. 「정통 중국현대사 - 중국공산당의 역사에 관한 결의」. 서울:사계절, 1990
※姬田光義 外/일월편집부 역, 「중국근현대사」 서울:일월서각, 1985.
하고 싶은 말
문화혁명과 중국의 역사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잘 언급되어 있으니 잘 참고하시어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방문자 여러분의 학업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