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 명주와 주도, 마케팅] 우리 민족 고유의 술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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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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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명주, 명주와 주도, 마케팅] 우리 민족 고유의 술 청주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연구 목적

2. 제품 기원

3. 국내 청주시장 변천

4. 생산 특성

5. 제품 특성

6. 제품 분류

7. 지원/통제

8. 음주 방법

9. 기타

10. SWOT 분석

11. 향후 추천전략
본문내용
1. 연구의 목적
처음에 청주를 조사하려고한 이유는 청주의 다양한 용도와 저도주 술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대됨에 따라서 제품의 종류와 특성 그리고 용도별 효능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 선택하였으나 청주를 선택한 우리 조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청주가 일본의 술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기에 청주가 우리 민족의 고유의 술이라는 사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2. 청주의 기원
1) 어원
청주는 우리 민족의 향취와 슬기가 어우러져 빚어낸 고유의 술이다. 청주는 양조주의 하나로서 백미로 제조하는 술이다. 우리의 주식인 쌀로 빚는 청주야 말로 진정 우리에게 걸맞는 술이 아닌가 생각되며 청주(淸酒)란 이름은 글자 그대로 '맑은 술'을 뜻하며 맑지 않은 탁주(濁酒)에 비교되어 붙어진 이름이다. 이조시대에 들어 언제부터인가 약주로 변화되어 불려져 왔다고 하며 가까운 일본에서는 이 청주의 제법을 크게 발전시켜 오늘의 청주 제조법을 확립하고 국주(國酒)로서의 자리를 굳혔던 것이다.
2) 삼국시대이전~삼국시대
우리 선조들은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청주를 빚어 마셨다. 마한시대에는 맑은 곡주를 빚어 바치며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고 또 감사를 드리는 제천행사를 가졌는데, 제사를 모실 때 청주를 올리는 이러한 풍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스님인 보리 형제가 술 만드는 선구자였는데, 백제의 인번이 일본에 건너가 새로운 방법의 술 제조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는 일본의《고지키[古事記]》란 책에 270∼310년 오진[應神] 천황 때 백제의 인번(仁番)이란 사람이 새로운 방법으로 희한한 술 미주(美酒)를 빚어서 세상에 선보였기 때문에 후세에 그를 주신으로 모셨다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미주는 청주의 전신인 듯하다. 또한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증보리(曾保利) 형제가 새술의 창시자로 이름을 떨쳤다는 기록도 있다. 이들은 청주가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일본의 술이 아닌 우리 민족의 우리 고유의 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당시에는 현재의 청주에 사용하는 쌀곡자나 배양효모 대신에 발효제로써 누룩을 사용했을 것이며, 그 외의 방법도 많이 달랐겠으나 현재의 청주 전신임에 틀림없다.
3)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중국에서 새로운 양조법이 도입되어 누룩도 소맥국과 미국으로 나누어 술을 빚었으며 질도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고려시대 「동국이상국집」의 시(詩)에서는 “발효된 술덧을 압착하여 맑은 청주를 얻는데 겨우 4-5병을 얻을 뿐이다”라고 했고, 「고려도경」에서도 “문종 때에는 왕이 마시는 술은 양온서(고려 문종 때 설치한 양온서(良磊署))를 두어 빚었는데, 청주와 법주 두 가지로 구분하여 질 항아리에 넣고 명주로 봉하여 저장해 둔다.”라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는 발효된 술덧을 압착하거나 걸러내어 맑은 술을 빚었고, 이미 덧술법을 사용하여 알코올 농도가 높은 청주를 빚은 듯하다. 즉 발효가 끝난 술덧을 잘 걸러내어 부드럽게 마실 수 있게 맑게 한 술이 청주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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