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사] `부석사`를 통해서 보는 한국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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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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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사찰 건축의 개관

1. 사찰의 기원

2. 우리나라 사찰의 역사

◈ 부석사

1. 부석사의 역사 및 건축 배경

2. 부석사 구성의 의미

3. 부석사의 가람배치

4. 천왕문 ~ 회랑

5. 범종각

6. 안양루

7. 무량수전

8. 무량수전 ~ 조사당

9. 부석사의 조사당

10. 응진전과 자인당

◈ 한ㆍ중ㆍ일 비교를 통한 한국 사찰의 특징

◈ 조사 후기
본문내용
◈ 사찰 건축의 개관

1. 사찰의 기원
사찰의 어원은 상가람마이다. 불교교단을 구성하는 비구(남자승려), 비구니(여자승려), 우바새(남자신도), 우바이(여자신도)의 사부대중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즉 많은 승려와 보살들이 불도를 수행하는 장소로서의 공간적 의미와 더불어 건축물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중국인들은 이 상가람마를 ‘승가람마’로 표기하였고 그것을 다시 줄여 ‘가람’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번역하여 ‘중원’이라 하였다. 후세에 이르러서는 건조물로서 전당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 또한 사찰의 통칭이 되었고 사원 자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불교가 처음 일어났던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승려들의 생활터전인 사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출가와 유향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인도의 기후가 수행생활에 부적합하여 유력한 신도인 왕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은 승려에게 우기 때 수행할 수 있는 원림을 기증하여 불교 최초의 사찰인 죽림정사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후 사찰은 단순한 수행처에서 성소로 그리고 기도처로 성격이 승화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2. 우리나라 사찰의 역사
한국 최초의 사찰은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온 3년 뒤인 375년(소수림왕 5)에 세워진 이불란사(伊弗蘭寺)와 초문사(肖門寺)이다. 신라의 경우는 구미(龜尾) 지방에서 최초의 포교활동을 하던 본거지인 모례(毛禮)의 초가집을 들 수도 있겠으나, 공식적인 최초의 절은 이차돈(異次頓)이 순교한 천경림(天鏡林)의 흥륜사(興輪寺)를 들 수 있다. 고대의 한국 사찰은 주로 시가지의 중심부에 건립되는 것이 상례였다. 이것은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시대상황과 사회적 여건에 따라 한국의 사찰은 수행이나 포교에 역점을 두는 특수성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입지조건에 따라 각기 다른 특징을 나타내게 되었다.

1) 고구려
고구려에서는 불교를 받아들이고 이를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사원을 많이 건립하였다. 소수림왕2년(372)에는 전진의 왕 부견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보내어 불교를 전하였고 동왕 5년(375)에는 국내성이 이불난사와 초문사를 창건하였다. 또 광개토왕 2년 (403)에는 평양에 9사(寺)가 창건되었고, 문자왕 7년(498)에는 평양 금강사가 창건되었다. 형유왕(618~642년 재위) 때에는 중대사, 진구사, 유마사, 대승사, 대원사, 금동사, 개천사등이 있었고 보장왕(642~668 재위)때에는 반용산 연복사, 영탑사, 육왕사 등이 있었다고 하나 그 위치는 확실하지 않다.

2) 백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