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안두희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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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안두희에 대해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문
2. 안두희가 자행한 백범 선생 암살 사건의 전말
(1) 안두희가 김구선생을 만나기까지.
(2) 안두희 심문과 당국의 수사 및 재판
(3) 미국의 배후
3. 한국의 호랑이를 암살한 사람의 끝
4. 나오며
본문내용
1. 서문
1949년 6월 26일의 백범 김구 암살 사건은 아직도 전 국민적인 관심사로 남아 있는 현대사의 대표적인 사건이다. 백범이 서거한 지 4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암살의 배후를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왜곡과 굴절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암살의 주범인 안두희는 범행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1년도 채 못 되어선 석방되어 육군에 복귀하여 대위로까지 승진되었다가 국회에서 그 사실이 문제되자 제대한 후 이승만정권의 비호를 받으면서 군납사업으로 호의호식하면서 떵떵거리고 살아온 반면, 민족의 영원한 스승이며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던 애국자 백범 김구 선생은 이승만 정권 시절 용공 또는 공산주의자로 몰린 사실은 우리 역사의 왜곡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승만정권이 4.19 학생혁명으로 무너지자 비로소 백범암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민간 차원의 운동이 일어났으며 이 때문에 안두희는 체포되어 구금까지 되었으나, 법률적으로 구속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보호조치를 받다가 석방된 사실까지 있었다. 진상조사가 별 진전을 못보고 있을 때인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민간 차원의 진상조사 활동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제 3,4,5 공화국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부 차원에서의 진상조사 요구를 꺼내지도 못한 채 민간에서 개인 혹은 단체들의 조사활동만이 간간히 이어져 왔을 뿐이다.
다만 안두희가 단독으로 백범선생을 애국적인 동기에서 시해하였다는 그릇된 사실이 역사적인 진실인 것처럼 통용되어 오던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데 의의를 두며, 본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2. 안두희가 자행한 백범 선생 암살 사건의 전말
안두희에 관해서 논하자면 아무래도 ‘김구 선생 암살범’이라는 오명을 제쳐두고서는 논할 수 없다. 비록 법적 시효는 끝이 났지만 역사적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는 권중희 씨의 말을 새기면서 안두희의 김구 선생 암살과정에 대해서 알아보고 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해방 직후,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져 국내적 상황은 불안하기 그지없던 때였다. 제대로 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갖은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그 방법에는 차이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서 김구 선생은 누구나가 잘 알다시피 좌․우익을 통합하여 민족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가장 큰 노력을 한 분이셨다. 또한 이러한 노력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고 있던 분이시기도 했다.
국내에서 이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김구 선생을 안두희가 암살하기까지는 치밀한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