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학] 법주사(답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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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문화학] 법주사(답사자료)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소재지 :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209, 553
* 개요
속리산에 자리잡고 있는 법주사는 보은지역의 주요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유명한 사찰이다. 법주사 사적기에 의하면 법주사가 처음 개창된 것은 신라 진흥왕14(553)년의 일이다. 흰나귀에 불경을 싣고 절터를 찾던 의신조사는 지금의 법주사터에 이르자 나귀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그 곳에 절을 짓고 법주사(法住寺;부처님의 법이 머무는 절)라 지었다. 창건 당시는 그리 큰 규모가 아니었던 법주사는 성덕왕19년(720)에 한차례 중수되고, 혜공왕 12년(776)에 진표율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비로소 대찰의 규모를 갖추고 법상종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그러나 삼국유사 4권 관동풍악발연수석기에 나타난 법주사의 창건기록은 앞서 언급한 사적기와는 그 내용이 다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진표율사가 속리산에 들렀다가 길상초가 난 곳을 발견하여 표시해두고 금강산에 가서 발연수사를 창건하였다. 이 곳에서 7년을 머무르다가 부안 부사의방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마침 속리산에 살던 영심, 융종, 불타가 찾아와 계법을 구하므로 “속리산에 내가 길상초가 난 곳에 표시를 해두었으니 그곳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길상사라 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속리산으로 돌아온 영심일행은 그 터를 찾아 절을 세우고 그 이름을 길상사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