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영향에 의한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스 신드롬의 고찰

 1  사회적 영향에 의한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스 신드롬의 고찰-1
 2  사회적 영향에 의한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스 신드롬의 고찰-2
 3  사회적 영향에 의한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스 신드롬의 고찰-3
 4  사회적 영향에 의한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스 신드롬의 고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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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회적 영향에 의한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스 신드롬의 고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목 차-

Ⅰ. 서론
1.문제제기
2.연구목적 및 연구방법
1)연구목적
2)연구방법

Ⅱ.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1.사이코패스 개념

2.선천적이다: 사이코패스의 유전적 영향의 입장

3.후천적이다- 사이코 패스의 사회적 영향 입장
1)이론적 배경
(1)사회해체이론
(2)사회통제이론
2)논문 주장 근거
(1)사이코패스의 테스트에 따른 나라간 범위차이
(2)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가 존재하는 이유

Ⅲ. 사이코패스 신드롬의 원인
1. 사이코패스 신드롬의 현황
2. 사이코패스를 통한 공포 정치화
3. 언론의 사이코패스 활용법
4.정치인․정부의 사이코패스 활용법

Ⅳ.결론

Ⅴ.참고자료


본문내용
허쉬는 그것이 사회유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허쉬는 범죄동기를 갖는 사악한 사람과는 달리 사회를 건전하고 인습적이라고 가정한다. 그래서 그러한 사회에 유대를 가질수록 범죄의 동기는 통제되며, 범죄를 안 하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많은 사회구성원들은 그러한 사회와의 유대를 형성하고 있게 되어 범죄를 안 하지만, 일부 사회유대를 맺지 못하는 사람만은 자신의 범죄동기가 통제되지 못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유대이론에서 가정유대를 강조했듯 부모와의 관계가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거나 또한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강조된다.
사회유대이론의 내용을 바탕으로 유영철의 어린시절에 대해서 찾아 보았더니 다음과 같았다.
유영철의 어린시절은 부모가 원치 않던 아이로 태어나 계모의 손에서 천덕꾸러기로 자랐고, 인생의 도덕적 기초가 형성되는 시기에 그의 주변에는 도덕적으로 건강한 어른이 없었다. 유영철의 아버지는 중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사망하고(유영철의 생활기록부에는 유영철의 아버지가 초등학교 시절 행방불명으로 돼 있다) 친모는 도덕교육에 대한 관념이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유영철은 열악한 어린시절에 대한 불만이 쌓였고, 옆집 누나의 기타를 훔치는 등 사소한 범죄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면서 재활 노력이 부족한 형사정책 시스템의 부조리를 느꼈고, 사회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갔다. 이 와중에 전처의 배신으로 유일한 안식처로 여겼던 가족이라는 울타리마저 깨지자 분노심이 극도에 달했고, 결국 윤락녀, 부유층 살해를 복수의 방법으로 택했다.
이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근거로서 어린시절의 가족간의 유대가 중요함을 다시한번 확인할수 있었다.

2004년 10월17일 편지
女子 하면 떠오르는 相(상)이 있냐구요? 저는 상당수 사람들이 선택했다는 ‘황진이’도 아니고 제 그림 상대 ‘엄지’도 아니고 소설 속의 ‘베아트리체’도 아니에요. 두 말할 나위 없이 ‘아이 엄마’라고 말하고 싶네요.
서로 百年偕老(백년해로)하지는 못했지만 참 착했던 사람이고 지난날 폐쇄적인 나에게 그 사람은 다정하고 건전하게 다가와 처음으로 ‘사랑’이란 걸 알게 해준 여자였어요.
착한 엄마에게서 나온 아이를 4~5세 때 시장엘 데리고 다닌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어머 쟤 좀 봐” “무슨 사내아이가 이렇게 이쁘니~” 그래서 기분이 좋았었는데. 누구든 자기 자식이 이뻐 보이는 법이지만 그 녀석 데리고 다니며 아무리 봐도 우리 애보다 이쁜 앤 없더라구요. 애정 없이 부족하게 자란 저라서 애한테 만큼은 정말 잘해 주고 싶었는데.
제가 이번 蠻行(만행)을 저지르면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아세요? 머리카락이 쭈뼛이 섰을 정도로 놀랐던 순간은, 잘린 머리가 수건걸이에서 떨어졌던 순간도 아니고 머리 없는 몸뚱아리가 내게 달려들었던 순간도 아니고 開腹(개복)한 임신부의 뱃속에서 움직이는 胎兒(태아)를 보았던 순간보다 더 긴장하게 했던 일. 남이 들으면 오히려 이해 안 가는 일이지만, 그건 사체를 토막 내는 와중에 아들 녀석에게 전화가 온 순간이었어요. 전화벨 소리에 놀란 게 아니라 당황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감기 아직 안 나았어 아빠?” 하며 물어보는 말이 “아빠, 난 다 알고 있어. 그러지마”하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 했었어요.
하던 작업(?)을 중단하고 너무 긴장해서 사체 토막을 늘어놓은 채 밥을 먹었어요. 긴장하니까 배가 고파지더라구요. 이은영씨도 배고프면 밥부터 먹는다는 것처럼 사체 정리도 안 하고, 라면은 좀 그래서(?) 그 늦은 시간에 밥을 해먹었어요.
사체 토막 내는 일이 얼마나 기(氣)를 집중해야 되는지 그 음악 틀어 놓고도 긴장을 늦출 수 없더라 구요. 그 다음날 아이를 만나면서 그 긴장감이 사라졌듯이 그 만큼 제 마음이 얼마나 아들 녀석에게 의존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일 겁니다. 아들녀석이 내게 주었던 정신적 위안과 행복감은 세상 그 어떤 무엇과도 비교가 안 되었다는 얘기예요.
[출처] 여기자와 유영철이 주고받은 편지 내용들에 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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