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답사] 창덕궁 답사보고서

 1  [문화유적답사] 창덕궁 답사보고서-1
 2  [문화유적답사] 창덕궁 답사보고서-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문화유적답사] 창덕궁 답사보고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답사에 들어가면서
우선 가장 먼저 돈화문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금천교가 보였다. 창덕궁의 금천교는 다른 궁궐 과는 다르게 정문에서 들어오는 방향에서 직각으로 꺾이여 설치된 점이 달랐다. 금천교에 해태 상은 부정한 것을 물리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금천교를 지나자 인정문이 나왔다. 인정문은 법전인 인정전을 통행하는 문으로 그 격이 상당히 높은 문이기 때문에 또한 임금도 즉위 전에는 아직 법전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해서 인정문에 서 즉위하고 인정전으로 들어가 옥좌에 좌정하고 신하들의 하례를 받았다고 하는데 옛날을 생 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행동이 조심스러워 졌다.
문을 지나자 탁 트인 길이 보이고 인정전을 중심으로 길을 따라 늘어선 품계석들이 있었다. 정 일품 정이품. 왼쪽은 문관 오른쪽은 무관이 있던 곳이다. 인정전 안의 용상에서는 일직선으로 아래까지 볼 수 있었다. 당시 왕의 위엄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케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정전의 잡상은 9개로써 경복궁 다음으로의 지위를 보여준다. 그러나 못내 아쉬웠던 점은 인정 전 주변의 높은 건물들이다. 세계 여러 나라가 문화유산 근처에 고층건물등을 허가를 잘 안 해준 다. 그만큼 선조들의 문화유산을 잘 관리하겠다는 의지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이 많이 부족한 듯 하다.
다음으로 낙선제가 기억이 남는다. 낙선제에는 윤비, 덕혜옹주, 이 방자여사 세 여자가 살았었 다. 낙선제는 국상을 당한 왕후와 후궁들이 거처하기 위하여 세워진 건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비련이란 단어가 당연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