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문화]청동기시대 주거문화, 원삼국시대 주거문화, 삼국시대 주거문화, 고려시대 주거문화, 조선시대 주거문화, 일제시대 주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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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문화]청동기시대 주거문화, 원삼국시대 주거문화, 삼국시대 주거문화, 고려시대 주거문화, 조선시대 주거문화, 일제시대 주거문화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청동기시대의 주거문화
1. 주거형태
2. 주거유적

Ⅱ. 원삼국시대의 주거문화

Ⅲ. 삼국시대의 주거문화
1. 고구려의 주거의 특징
2. 백제 주거
3. 신라와 통일신라
1) 신분에 따른 주거의 형태
2) 냉, 난방 방식

Ⅳ. 고려시대의 주거문화

Ⅴ. 조선시대의 주거문화

Ⅵ. 일제시대의 주거문화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청동기시대의 주거문화

1. 주거형태

이 시대 주거지를 살펴보면, 주거지의 대부분은 하천연안에 있는 평지에 위치하였으며 취락도 커지고 평면도 다양해졌다. 평면은 장방형이 대부분이며, 기둥구멍은 벽선을 따라 있는 것도 있고, 또 전혀 없는 것도 있다. 화덕자리는 중앙에서 벽 쪽으로 치우쳐 지며 두 개 있는 것도 많이 있으며, 또 전혀 없는 것도 있다. 농경의 발달로 인한 저장시설이 확대되어 저장공은 사라지고 저장움이 등장하며, 수혈의 깊이는 점차 낮아진다.

2. 주거유적

함경북도 회령오동(會寧五洞), 나진 초도(草島), 평북 강계시 공책동(江界市 公責洞), 의주군 미송리(美松里)등이 있고 남한에서는 여주군 흔암리(欣岩理), 파주군 옥석리(玉石里), 서울특별시 강동구 가락동(可樂洞)등에 분포되어 있다. 이 청동기 시대는 김원룡(金元龍)에 의하면 B. C. 1500년경부터 보고 있다.
함경북도 회령 오동(五洞) 제2기 8호 집자리는 이는 8.4M×6.5M의 장방형평면으로 움깊이 1.75M, 움바닥은 진흙을 깔았고 화덕자리는 동남에 1개 서북에 1개 있으며 기둥구멍은 장축을 따라 4줄로 130여 개 있었다. 이 집 자리에서 주목할 것은 동남쪽의 화덕은 방바닥을 파고 그 둘레에 막돌 8개로 둘러싼 것이고, 서북쪽 것은 방바닥에 진흙으로 둘러싼 것인데 동남쪽 것에만 재가 차있는 것으로 보아 항상 불을 피우던 즉 취사용 화덕이고, 불 피운 흔적만 있는 서북쪽 것은 추운 겨울에만 불을 지핀 난방용의 것이라 추측된다.
☞ 농경생활로 마을이 형성되고 정착생활을 하게 됨으로써 취사와 난방의 두 기능을 분화하게 된 것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Ⅱ. 원삼국시대의 주거문화

원삼국시대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중국의 문헌들에 의하면 이미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등의 삼한들과 고구려, 백제, 신라들이 부족국가 형태로 정치, 사화제도를 이루면서 생활하였던 시대이다.
이 시대의 주거, 나아가 난방시설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 이전에 최근 조사 발굴된 전라남도 승주군 낙수리와 승주군 대곡리 유적등 주암(住岩)댐 수몰지구에서 조사 발굴된 주거지들을 살펴보면 철기시대의 주거지들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낙수리(洛水里) 2호 주거지는 말각방형(抹角方形)의 형태로 된 평면으로 키기는 560cm×500cm, 깊이 5-35cm로서 남벽 서쪽 기둥 구멍 옆에 화덕자리가 나왔는데 이는
참고문헌
김규정, 호남지방 청동기시대의 주거지연구, 목포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00
김정기, 청동기시대 및 초기철기시대의 수혈주거, 한국고고학보 34, 한국고고학회, 1996
나종운, 개항 이후 한국주거건축의 지속성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신영훈, 한국주거문화의 역사, 기문당, 1991
오세연, 중부지방 원삼국시대 문화에 대한 연구 - 주거양상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5
주거학연구회, 넓게 보는 주거학, 교문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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