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 나도향 `벙어리 삼룡이`속 낭만성과 사실성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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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문학] 나도향 `벙어리 삼룡이`속 낭만성과 사실성 고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사실주의
2. 나도향 문학과 1920년대 한국 사실주의
3. 「벙어리 삼룡이」

Ⅲ. 결론

※ 참고문헌

※ 작가연보
본문내용

Ⅰ. 서론
나도향(羅稻香)은 1902년 5월 7일 지금의 서울 청파동에서 출생하여 1926년 8월 26일 생을 마감한 작가이다. 작품 활동은 192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약 5년간 30편에 가까운 소설과 그 외 평론, 수필, 시 등등 수편을 발표하여 천재작가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그의 본명은 경손(慶孫)이며 그의 필명은 빈(彬)이다.
나도향은 24년 4개월이란 짧은 생애로 요절하였지만 일제 강점기의 전반부를 경험하고, 병고에 시달리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도향은 어렸을 때 명의였던 조부 나병규의 보살핌 속에서 유복한 생활을 하였다. 도향은 가업을 잇기를 바라는 조부의 뜻에 따라 경성의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도향은 의전에서 전공 공부보단 문학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문학수업을 시작했다. 1919년 도향은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위해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진학하기로 마음먹고 조부의 돈을 훔쳐 일본으로 향했다. 하지만 조부의 도움 없이는 일본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결국 몇 달을 견디지 못하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1920년대 초반 낭만주의의 화려한 시대를 열어갔던 백조에서 활동했던 당시 나도향의 작품으로는 「젊은이의 시절」1922.1),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1922.5), 「환희」(1922.11~1923.3), 「옛날 꿈은 창백하더이다」(1922.12)등이 있다. 그러다가 사실주의 사조의 영향을 받아 낭만주의적 작가에서 사실주의적 작가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이때의 과도기적 작품으로 「행랑자식」(1923.10), 「여이발사」(1923.9), 「전차차장의 일기 몇 절」(1924.12)등을 발표했다. 그리고 후기작품으로는 현재 많이 알려져 있는 「벙어리 삼룡」(1925.7), 「물레방아」(1925.9), 「뽕」(1925.12) 등이 있다.
참고문헌
김교선, 「관념소설로서의 벙어리 삼룡이」, 『한국언어문학 vol21』, 한국언어문학회, 1982.
김사림, 「나도향의 생애와 작품 세계–미완성의 리얼리즘」, 나도향, 『벙어리 삼룡이』, 신원문화사, 1990.
김학동, 「자연주의 소설론」, 이재선 외, 『한국근대문학연구』,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69.
이국용, 「나도향 소설의 작중인물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이재선, 『현대한국소설사』, 흥선사, 1979.
윤홍로, 「나도향 낭만과 현실의 辨證」, 『나도향-문학의 이해와 감상 94』,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7.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2005.
한상무, 「사실주의 소설의 형성」, 문학과문학교육연구소, 『한국현대소설사』, 삼지원, 1999.
홍희규, 「나도향 연구-낭만적 사랑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 작가연보

1902년
3월 30일, 서울 청파동에서 경성의전 출신 의사인 아버지 나성연과 어머니 김성녀 사이의 장남으로 출생. 본명은 경손(慶孫), 호는 도향(稻香), 필명은 빈(彬).
1917년
개옥보통학교를 거쳐 배재학당에 입학(교유지 편집 등을 맡아 문예 활동을 함).
1919년
배재고보 졸업. 경성의학전문학교 입학. 문학에 뜻을 품고 고종 인산인 3월 1일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 영문과에 입학하려 했으나 본가(本家)에서의 학비송달이 막혀 귀국.
1920년
경북 안동에서 1년간 보통학교 고사로 근무. 이때, 자신의 체험인, 일본인 여교사와 사랑을 소재로 중편 「청춘」을 씀.
1922년
현진건‧홍사용‧박영희‧이상화 등과 문예 동인지 《백조》를 창간, 우리 나라 신문학사상의 로맨티시즘 운동을 일으킴. 단편 「젊은이의 시절」,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백조》), 「옛날 꿈은 蒼白하더이다」(《개벽》), 시 「투르게네프 散文詩」(《백조》), 장편 「환희」(《東亞日報》) 연재.
1923년
이 무렵부터 백조파적인 감상을 극복하고 사실적인 경향으로 전환. 장편 「환희」(조선오서주식회사), 단편집 《진정》(영창서관)을 간행. 단편 「17원50전」‧「춘성」‧「행랑자식」(《개벽》), 「여이발사」(《백조》), 콩트 《속 모르는 만년필 장사》 발표.
1924년
단편 「자기를 찾기 전」‧「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개벽》), 논문 《문단으로 본 경성》 발표.
1925년
2월, 수학의 뜻을 이루려고 재차 건너가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듬해 귀국. 단편 「벙어리 삼룡이」(《여명》), 「뽕」(《개벽》), 「의사의 고백」‧「계집하인」‧「물레방아」‧「꿈」(《조선문단》), 「한강변의 일엽편주」‧「피묻은 몇 장의 편지」 등과 계급문학 시비론 「뿌르니 뿌로니 할 수는 없지만」(《개벽》), 수필 「주노애이」(《生長》), 시 「찾아나볼까?」‧「오늘엔 날더러 서방님 하지만」‧「사랑고개」(《조선문단》), 수필 「5년 전 창작 당시를 회상하면서—환희」‧「제가의 연애관—내가 믿는 문구 몇 개」‧「하고 싶은 말 두엇」‧「벽파상에 일엽주」(《조선문단》), 잡문 「쓴다는 것이 죄악 같다」(《조선문단》) 발표.
1926년
8월 26일 폐환으로 24세를 일기로 요절. 중편 「청춘」을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간행. 최학송을 비롯한 문우들이 모금하여 묘지(이태원 공동묘지)에 비(碑)를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