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Peter Ferdinand Dru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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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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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Peter Ferdinand Drucker 1909.11.19~2005.11.11
목차
1. 인물소개
2. 업적
3. 피터 드러커의 이론
-고슴도치 기업이론과 여우 혁신전략
4. 피터 드러커의 저서소개
5. 피터 드러커의 명언소개
1. 인물소개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1909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했다. 빈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독일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를 거쳐 3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국제법과 공법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신문 기자로 일했으며, 런던의 국제 은행에서 경제 전문가로 일하기도 했다.
히틀러를 피해 런던으로 이주했다가 37년 미국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인 저술활동에 들어가 최초의 저서인 「경제인의 종말」을 출간했다. 1939년에는 뉴욕 주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경제학 및 통계학을 강의했고, 1942년부터 1949년까지는 버몬트 주 베닝턴 대학에서 철학 및 정치학 교수를 지냈다. 1943년에는 제너럴 모터스(GM) 컨설팅을 수행했고, 1947년에는 마셜 플랜에 고문 자격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1950년부터 1971년까지 뉴욕 대학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하였고, 1971년부터 2003년까지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 경영대학원(현재는 드러커 경영대학원으로 개명됨) 사회과학부 석좌 교수직을 역임했다. 1990년에 드러커 비영리 재단이 설립되어 재단 명예 이사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비롯한 많은 잡지에 글을 기고했고, 『월스트리트 저널』의 정기 기고자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2005년 11월 클레어몬트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2. 업적
① 현대 경영학의 이론적 토대 구축
분권화(Decentralization),민영화(Privatization),권한위양(Empowerment),지식노동자(Knowledge Worker),학습조직(Learning Organization),목표관리(MBO),수평조직(Flat Organization) 등 오늘날 일상화되어 있는 경영용어들이 모두 드러커가 처음으로 만들어낸 것임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는 경영학의 초창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반세기가 훨씬 넘는 세월 동안 경영학의 기본적인 골격과 이론적 토대를 구축해 온 학문의 태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전성기를 지난 구시대의 학자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는 경영학의 주요한 전환기마다 핵심적인 개념을 안출해 낸 혁신적인 경영학자이며, 90세가 넘는 지금까지도 미래를 내다보는 날카로운 혜안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활동하던 초기만 해도 아직 경영학의 학문적 기반은 일천하였으며 테일러, 포드 등 현장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드러커는 유럽에서 정통 학문을 배운 지식인으로서 경영이 단순히 장사꾼만의 관심이 아니라 사회과학의 연구대상이라는 점을 밝히고 경영학의 이론적 기초를 닦는 중요한 작업을 하게 된다. 그는 버몬트의 베닝턴 칼리지에서 정치학과 철학 그리고 경제학을 강의했는데 이때 ‘경제인의 종말 - The End of Economic Man’(1939), ‘산업인간의 미래 - Future of Industrial Man’(1942)라는 초기 저작을 내놓았다. 그의 저작은 학계로부터 조롱을 받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기업이란 영리추구 집단에 불과하며 학문이 이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경영학이 사회적으로 누리고 있는 인기를 생각할 때 격세지감이 있으며, 경영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드러커의 선견지명과 업적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그는 GM에 대한 광범위한 사례 연구를 통해 기업경영의 성공요인으로 분권화를 제시하였다. 이는 당시 중앙집권적인 피라밋 구조를 채택하고 있던 대부분의 기업에게는 충격적인 메시지였다. 포드, 제러럴 일렉트릭 등 당시의 거대기업들은 드러커의 조언을 신속하게 도입함으로써 큰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