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具常) 구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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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具常) 구상준
Ⅰ. 생애와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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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은 1919년 9월 28일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에서 양반 가문 출신의 아버지와 기독교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상준이며 필명은 상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독일계 가톨릭 베네딕트 수도원의 교육 사업을 위촉받은 포교사로서 함경도 지구 선교를 맡았기 때문에, 1922년 구상의 나이 4세 때 그는 함경남도 덕원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의 유년 시절의 체험은 1960년대 연작시인 『밭일기』에 잘 나타나고 있다.
. 열다섯 살에 천주교 집안의 영향을 받아 소신학교(小神學校)에 다녔지만 3년 만에 뛰쳐나오고 만다. 소신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유학 간 그는 니혼대학 종교과에 입학하여 프랑스와 서구의 급진사상을 경험하고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 각 종교의 철학적 근거를 배우며 후에 자신의 정신적 근원을 다져주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일본에서의 공부를 마친 구상은 1942년 귀국했고 징용을 피하기 위해 원산에서 친일신문인 『북선매일신문』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때 그는 동인지와 신문에 「예언」, 「수난의 장」, 「세레나데」등을 발표한다.
광복 후 1946년에 구상은 해방 1주년 기념 시집 발간에 작품을 내달라는 청탁을 받고 원산문학가 동맹의 동인지 시집 『응향』에 「밤」, 「여명도」, 「길」 등의 시를 발표하여 본격적인 문단데뷔를 하였으나 ‘응향필화사건’ 1946년 원산문학가동맹에서 간행한 최초의 동인시집 『응향』의 작품들에 대해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 규탄 결정서를 내린 사건으로 “북조선 현실에 대한 회의적 공상적 퇴폐적 현실도피적 절망적 반동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으로 반동시인으로 규탄을 받고 1947년 월남하였다. 같은 해 11월, 남한에서의 첫 번째 시작품 「발길에 채인 돌멩이와 어리석은 사나이와」를 『백민』에 발표함으로써 남한 문단에 정식으로 입성하게 된다.
그 후 구상은 『연합신문』 문화부장으로 역임하다 1950년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서울이 수복할 때까지 육ㆍ해ㆍ공군의 종군작가단으로 활약한다. 이때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동족상잔의 참혹상과 이데올로기에 의한 분단의 현실을 직접 목도하고 경험한 사실을 시적 안목으로 형상화 한 것이 1965년 출간된 연작시 『초토(焦土)의 시(詩)』이다.
구상은 1953년 『영남일보』의 주필 겸 편집국장을 맡았으나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민주고발』이라는 책자를 발간했던 일, 집단 데모에 앞장서며 정치집회 연사로 나선 일 등으로 조작된 ‘레이더사건’ 자유당 정권은 이적(利敵) 병기(兵器)를 북한에 밀반출하려했다는 혐의로 시인 구상을 잡아넣었다. 구상의 친구가 남대문 시장에서 미제 진공관 두 개를 사서 동경대학교에서 연체생물 연구를 하고 있는 사위에게 보낸 것을 구실 삼아 반공법 위반죄로 그와 친구를 잡아넣은 것이다. 검찰은 그에게 15년형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구상은 최후 진술에서 “조국에 모반한 죄목을 쓰고 유기형수(有期刑囚)가 되느니보다 무죄가 아니면 사형을 달라”고 말했다. 다행히 재판관이 무죄를 선언함으로써 그는 6개월여 만에 풀려났다.
을 계기로 6개월간 옥중 생활을 한다.
그 후 『경향신문』, 『가톨릭신문』 등의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65년 일본 동경 교외 기요세 병원에서 두 차례의 폐수술을 받고 2년간의 요양을 하는데 요양 중 연작시 『밭일기』 100편을 대략 완성하고 1967년 4월 초까지 『주간 한국』에 13회에 걸쳐 101편을 연재한다.
1970년 하와이 대학교 극동어문학과 부교수로 가게 되고 하와이에서 생활 중 연작시 『강』을 준비한다. 같은 해 11월, 『현대시학』에 자전 연작시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의 게재를 시작하다가 1972년 9회로 집필을 중단한다. 1975년 서울 성바오로 출판사에서 『구상 문학선』을 펴낸다. 1998년부터 흥사단 명예단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시를 비롯해 희곡과 시나리오수필 등의 작품 활동도 꾸준히 병행하다가 폐결핵으로 2004년 5월 별세하였다.
【 참고 】 구상의 연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