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모의 시세계 연구 얼어붙은 땅에 온기를 불어넣은 시인 정한모 정한모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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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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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정한모의 시세계 연구
- 얼어붙은 땅에 온기를 불어넣은 시인, 정한모

Ⅰ. 들어가며
Ⅱ. 정한모의 생애
Ⅲ. 연구사 검토
Ⅳ. 정한모의 시세계
1. ‘밤’과 ‘어둠’ - 불안 의식
2. ‘아가’ - 휴머니즘
3. ‘유두(乳頭)’ - 에로티시즘
4. ‘어머니’ - 전통의식
5. ‘새벽’ - 미래지향의식
Ⅴ. 나가며
Ⅵ. 토론 및 감상
Ⅰ. 들어가며
정한모 시인은 해방이후 시론과 시사 연구에 있어서 제1세대로서 그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 된다. 그는 40여년 가까이 후학을 가르치고 제자를 길러낸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통해 수많은 시인과 평론가, 국문학자를 배출하여 문단과 국문학계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바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문화공보부장관까지 역임한 문화예술행정가로서의 활동도 겸하였다. 이로써 시인, 학자, 교육자로서의 후학들에게 미친 학문적, 정신적 영향의 깊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평가 된다. 이병철, 「정한모의 시의식 연구」,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1999.
본고에서는 정한모의 생애와 기존의 연구사 검토, 그리고 그의 작품을 통한 고찰을 통해 그 시세계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Ⅱ. 정한모의 생애
정한모는 1923년 10월 27일 충남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36년 3월 석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14세 때 부친을 찾아 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의 로카(浪華)상업학교에 입학한다. 4학년 때부터 일본어 담당인 담임교사의 격려에 힘입어 문학에 대한 관심이 습작으로 구체화 되었다. 그러나 시작의 결정적 동기는 ‘부고’였다. 10대 후반 아버지의 죽음소식을 듣고 큰 충격과 더불어 그 슬픔을 시로 쓰게 되면서 시작을 하게 된다.
시를 쓰겠다는 의식을 가진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그 무렵 국어(일어)를 가르치고 시인 이상의 생활을 하고 있던 선생이 있었지요. 동경사범을 나왔는데 3년동안 취직도 않고 사찰같은 곳을 헤매다가 교편을 잡은 사람인데 요즘처럼 긴 장발에다 일년내내 양벌 한벌로 지내며 수업중에도 가르칠 생각은 않고 창밖을 넋 나간 사람처럼 응시하기도 곧잘 했지요. 그 선생이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알고 관심을 가져 개인적인 지도도 해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에게서는 시의 영향보다 인생을 보는 태도에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작의 결정적인 동기는 아버지의 부음소식이 나에게 큰 충격과 더불어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전보를 받고 귀국하는 기차 안에서, 그리고 연락선 안에서 나는 이상할 이만큼 계속 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일생에 있어 처음으로 당한 슬픔이 글을 쓰고 싶은 충동으로 와 이때 시의 형식을 빌어 많이 썼습니다. 아마 이것이 시인으로 출발한 커다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정한모, 김종철「나의 문학, 나의 시작법」, 『현대문학』, 시와시학사, p57~58
1942년 4월 문학 공부에 뜻을 두고 여기저기 대학전문부(大學專門部)를 기웃거리다가 귀국하여 일문으로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경성제대에서 청강하느라 서울을 오르내리던 중 1944년 12월에 강제 징용을 당하여 일본 나고야에 있는 미쓰비시항공기계제작소에 수용되어 임야개간 등 여기저기 노역장에 끌려다녔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징용으로 끌려와 있던 젊은이들과 정신대로 끌려와 있던 여공들을 인솔하고 위기와 난관을 헤치고 11월에 귀국하였다. 귀국하자 곧 서울에 올라온 그는 동인들과 합류하여 그해 12월 창간호를 발간하게 된다. 은 해방후 최초로 간행된 문학동인지였다. 그러나 의욕만 앞섰지 작품의 수준의 함량 미달이었던 은 창간호로 무려 일만 부를 인쇄하였으나 거의 팔리지 않고 파산하여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되고 말았다. 다음해 1946년 봄 김윤성 백맥 동인으로 참가하여 들국화 등의 작품을 발표한 시인. 작품으로는 『바다가 보이는 산길』(1959), 『예감』(1970), 『애가』(1973), 『자화상』(1981), 『돌의 계절』(1981) 등의 시집과 시론집 『시의 고향』(1960)등이 있다.
과 함께 몇몇 동인들을 추려 이란 시동인회를 따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역시 4집까지는 등사판으로 힘들게 발간하고 5, 6집은 납본용으로만 발간된 후 종간되었다.
1947년 9월에 정한모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이 무렵에 그는 전광용, 남상규, 정한숙 등과 각 대한 문학서클을 모아 이란 동인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동인구성에 약간의 변동은 있었으나 20년 이상 동인의 모임은 지속되었다. 그 때만 해도 공보처에 정기간행물 등록을 하고 동인지를 내던 때이다. 6개월간 결간을 하게 되면 등록을 취소당하는 때였는데, 정한모는 동인회보다 동인회 쪽에 더 관심이 많았던 듯은 이 무렵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고 1954년 9월 서울로 올라와 10월 휘문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그는 1955년 1월에 다른 동인과 함께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이 한국일보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가 본격적인 창작활동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시단활동을 한 50년대 후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