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가에 대한 몇 가지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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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처용가에 대한 몇 가지 고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고전시가교육론 >
에 대한 몇 가지 고찰
- 처용, 넌 누구냐? -
1. 본문, 배경설화
1)본문, 향찰, 현대어 해석.
入良沙寢矣見昆
脚烏伊四是良羅
二隱吾下於叱古
二隱誰支下焉古
本矣吾下是如馬於隱
奪叱良乙何如爲理古
긔 래
밤드리 노니다가
드러 자리 보곤
가리 네히어라
둘흔 내해엇고
둘흔 뉘해언고
본 내해다마
아 엇디릿고
동경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해였고
둘은 누구핸고
본디 내해다만는
빼앗은 것을 어찌하리오 김완진(1980), 『향가해독법연구』, 서울대출판부, p. 94
2)배경설화
제49대 헌강대왕(憲康大王) 대에는 서울로부터 동해 어귀에 이르기까지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고 담장이 서로 맞닿았는데, 초가집은 한 채도 없었다. 길에는 음악과 노랫소리가 끊이질 않았으며 바람과 비는 사철 순조로웠다. 이때 대왕이 개운포(開雲浦)로 놀러갔다 돌아오려 하였다. 낮에 물가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캄캄하게 덮여 길을 잃게 되었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주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일관이 아뢰었다.
“이는 동해에 있는 용의 변괴이니 마땅히 좋은 일을 하여 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짓도록 유사(有司)에게 명령하였다. 명령을 내리자마자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졌다. 이 때문에 그곳의 이름을 개운포라 한 것이다. 동해의 용은 기뻐하여 곧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의 수레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며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 중 한 아들이 왕의 수레를 따라 서울로 들어와 왕의 정사를 보필했는데, 이름을 처용(處容)이라 하였다. 왕은 미녀를 주어 아내로 삼게 하고 그의 마음을 잡아 머물도록 급간(級干)이란 직책을 주었다. 그의 아내가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역신(疫神)이 흠모하여 사람으로 변해 밤이 되면 그 집에 와 몰래 자곤 하였다.
처용이 밖에서 집에 돌아와 두 사람이 자고 있는 것을 보고는 노래를 지어 부르고 춤을 추다가 물러났는데,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 ……. )
그때 역신이 형체를 드러내 처용 앞에 꿇어앉아 말하였다.
“제가 공의 처를 탐내어 지금 범했는데도 공이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탄스럽고 아름답게 생각됩니다 맹세코 오늘 이후로는 .(公不見怒. 感而美之.) 공의 형상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