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바다의 도시 이야기

 1  서평 바다의 도시 이야기-1
 2  서평 바다의 도시 이야기-2
 3  서평 바다의 도시 이야기-3
 4  서평 바다의 도시 이야기-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서평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바다의 도시 이야기
*책 내용에 제가 따로 추가해서 썼습니다. 저에 대해 아시는 분이면 어디서 어디가 추가 되었는지 아시겠지요...(웃음)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 중 하나인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북이탈리아의 조그만 도시인 베네치아가 1000여년(어느시점을 기준으로 하느냐부터 기간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 그것 말고도 992년을 버틴 신라가 천년왕국이라 불리는 것처럼 베네치아도 천년의 역사를 이어져 내려왔다고 흔히들 비유 하므로. 당장 이책의 겉표지에도 베네치아 공화국 1천년의 메시지라고 쓰여져 있다.)동안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해 쓴 책이다.
아틸라의 침공과 게르만족의 민족대이동 등으로 극한 혼란에 휩싸였던 서로마 제국 말기 그들을 지켜주던 레기온(군단병)도 코미타텐세스(기동군)도 사라졌거나 무기력하게 당하던 시기, 살기위해 일단의 사람들이 북이탈리아의 라구나라고 불리는 사람이 살기 힘든 개펄지대로 도망친게 현재 베네치아에 사람이 살게된(그 이전에도 몇몇은 있었겠지만 실질/공식적으로 사람이 살게된)것의 시초이며 이들은 그후 롬바르디의 위협을 받고(이시기 전쟁을 피해 피난온 사람들로 인구가 늘어 났고 개발도 탄력을 받았다.) 베리사리우스의 동로마 제국군에 의해 동로마에 편입되어 한동안 서유럽 속주로 살다가(그래도 실질적으론 자치를 보장받았다. 많은 배와 우수한 선원들을 대량보유했기 때문에 동로마에서도 그들에게 운송업무를 맡긴 대신에 자치를 주었기 때문) 동로마가 650년대를 전후하여 이슬람에게 아나톨리아와 발칸반도를 제외한 전토를 빼앗긴 이후 급속도로 약해지고 인구가 팽창하면서 모두를 이끌 통합체가 필요함에 따라 697년 주민 투표로 도제(doge)라 불리는 종신 국가 원수를 선출하면서 실질적으로 국가의 형태를 갖추어 나갔다. 건국된 이후에도 한동안은 동로마의 속령으로(베네치아의 도제는 동로마 황제로부터 달마티아 공작을 겸하고 있었다. 비잔티움 제국은 서유럽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은 명목상의 지위에 불과했지만)지냈지만 이 지위는 베네치아가 서유럽(교황청, 신성로마제국 등등)에게서 정치적, 종교적 독립을 지키는 적당한 명분이 되었으며(특히 9세기 프랑크 왕국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비잔티움 제국이 직접적으로 개입/보호했으므로), 베네치아는 10대 당시 나라자체를 통째로 옮기면서(현재의 자리로) 강력한 상업을 통해 이룬 재력 및 군사력과 서유럽 최고의 외교력으로 이것을 충분히 활용했다.
그후 중세를 기점으로 지중해 상권의 중심지이자 독점국가로 등극하면서(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비잔티움 제국이 급속히 쇠락한 덕분에 그나마 건재한 해군도 유지하지 못하면서 제노바와 베네치아에게 어느정도 위임했기 때문) 엄청난 부를 과시했다. 특히 십자군 전쟁 중 처음에는 제노바와 엎치락 뒤치락 하는 사이였으나, 1202~04년의 4차 십자군 전쟁 때 원래 이슬람을 치기 위해 모여든 프랑스 기사단의 빚을 이용해 조종해서 비잔티움을 공격,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중요 상업루트를 독점, 단번에 제노바를 따돌리고 동지중해의 패자로 군림했다.(이당시에 크레타섬 등지를 비잔티움에게서 강탈했다.) 심지어 프랑스인을 비잔티움의 옥좌에 앉히고 소위 라틴 제국을 창설해 1261년까지 60년이나 그리스를 간접 통치하기도 했다.(덕분에 발칸지역에서 베네치아는 최악의 평판을 가졌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의 13~15세기에는 지중해 곳곳과 발칸반도에 무역거점을 잔뜩 건설해 엄청난 판도를 자랑했으며 당대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였다. 15세기 이후로는 발칸 반도와 소아시아, 서아시아 일대를 세력권에 넣었던 절정기의 오스만 제국과 동지중해의 제해권을 두고 충돌했다.(물론 오스만 제국이 육군국이었던 것과 제대로 된 해군이 없어 해적-물론 샤략해적이다- 으로 해군력을 건설했던 것도 한 몫 했다. 해군 총사령관인 카푸단 파샤가 예니체리 사령관과 동급이기는 했지만.)
그중에서 유명한게 레판토 해전과 크레타 공방전인데 레판토해전의 경우 에스파냐가 핵심이긴 했지만 전함 212척 총병력 4만920명의 신성동맹 함대에서 숫적 주력은 에스파냐의 마음을 돌려 개전을 결심하게 하고 그자신도 전체 함대의 절반이상을 담당한 베네치아 였으며(함선 111척) 크레타 공방전의 경우 1645년부터 1669년까지의 크레타 공방전의 경우 이미 상업과는 거리가 멀어진 상황에서도(대서양 상권번영으로 지중해 상권이 쇠퇴하면서 수공업과 농업으로 국가경제를 전환했고 또한 수공업에서도 유리공업, 견직물공업, 출판업을 제외하면 프랑스에게 뒤쳐져 점점 농업 위주의 국가가 되어갔다.)크레타를 지키기 위해 오스만 제국의 물량에 맞서 질적인 우위-화승총과 대포, 그리고 갑옷을 충실하게 입은 보병, 훈련도 등-로 버티면서 양국을 재정적 파탄에 이르게까지 하며 싸우다가 베네치아군 수비대장이 항복하면서 크레타를 잃게 되나 이미 쇠퇴한 소국이 초강대국을 상대로 양패구상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생각하면 베네치아의 저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가 있다.
크레타 공방전 당시 베네치아 영토. 하늘색이 베네치아이다.
그러나 끝내 오스만 제국의 물량공세에 해외의 주요한 거점들을 모두 잃고 대서양 상권번영으로 지중해 상권이 쇠퇴하면서(강력한 오스만과 싸우지 않더라도 많은 부를 얻는게 가능한데 굳이 싸울 필요가 없으므로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간단히 게임으로 설명한다면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에서 시리즈를 불문하고 지중해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인도 향신료 항해라든가 신대륙의 금/은 무역보다는 수지가 매우 낮고 전쟁으로 그나마 번 것도 잃을 확률이 높다.)17세기 후반부터는 다른 이탈리아 국가들과 다를 바 없는 소국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 비무장 영세 중립국을 선언하지만, 1797년 그런 선언따위 지킬 리 없는(어느 누구라도 그런 것을 지키겠냐만은...)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인해 멸망했다.
그러면 어떻게 베네치아는 그렇게 융성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