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미국과의 대립과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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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미국과의 대립과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미국과의 대립과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
1. 신민주주의
(1)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 강령
1949년 10월 1일, 마오저똥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함으로써 중국은 마르크스주의를 기치로 내건 공산당이 지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사회주의 체제의 시작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는데, 공산당이 2단계 혁명을 내세워 당분간 신민주주의적 변혁을 과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건국 직전 발표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강령 당시 민주 동맹 등 민주주의를 내건 여러 당파와 공동으로 헌법을 대신하여 만든 것
에 잘 나타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신민주주의적 변혁은 강령 제3조(농업국→공업국), 26조(경제 조정, 분업협업을 통항 사회 경제 전체 발전 촉진), 28조(사회주의적 경제 발전), 29조(반사회주의적 경제 발전)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가지 형태의 경제가 병존한 상태에서 공업화를 이루고자 하였다. 정치에 있어서는 "…민주적인 여러 계급과 국내의 각 민족을 결집한 인민 민주 독재를 실행…"이라고 하여 공산당의 지도를 명기하고 있지는 않다. 실제 공산당의 독재일 수밖에 없었으나, 어느 정도 민주적으로 처리하려는 분위기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공산당 지도자의 발언
1950년 6월 초순, 공산당은 국내 개혁과 경제 부흥을 과제로 하는 7기 삼중 전회를 개최하였다. 거기에서 마오저똥은 "…자본주의를 빨리 소멸시키고, 사회주의를 실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이러한 판단은 중국의 실정에 맞지 않다."고 하였다. 계속되는 정치협상회의의 전국위원회가 열렸는데, 여기에서의 주요 골자는 전쟁을 통해 국민당의 잔존세력을 일소하고 토지 개혁을 하고 나서 이로부터 다년간에 걸친 경제 건설과 문화 건설을 통해 먼 장래에 사회주의 사회를 천천히 민주적으로 실현이다.
(3) 경제 부흥과 국가자본주의
공산당은 국민정부국민당과 관련된 자산을 몰수하여 국유국영화 하였다. 공산당은 이러한 것을 관료 자본이라고 총칭하고 매판자본 중국의 국익을 제국주의에 팔아 넘긴 매국적 자본
이 국가 수준까지 발전한 것으로서 그들이 말하는 보호받아야 할 민족 자본(애국적 자본)과는 구별하였다. 이에 따라 공산당은 근대 기업의 주요한 부분을 장악하게 되었다. 공산당은 또한 중국에 있는 외국 자산도 몰수하였다.
국공 내전 말기에 이르자 전쟁에 의한 황폐화와 극도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는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새로운 공산당 정부가 군사비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나 실업자들의 구제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화폐를 증발하여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추겼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정부는 재정금융무역의 엄격 통제, 국영 기업의 생산 재개 우선 정책, 식료와 면포를 통제하여 중점적으로 공급하였다. 이로써 1950년 봄에 물가가 기본적으로 안정되었으나 강압적인 디플레이션 정책과 엄격한 통제에 의해 민간 상공업은 더 심한 위기에 처하게 되어 기업이 대량 도산하거나 실업이 늘어났다.
먼저 있었던 7기 삼중 전회에서 마오저똥은 상공업의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이는 민간 생산유통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의미한다. 이러한 형태는 항일 전쟁기의 대후방에서도 행해졌다. 이를 국가자본주의라고 하여 국가와 민간의 합작경영은 이보다 더욱 진행된 형태의 국가자본주의라고 평가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개조가 먼 장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당시로서는 국가와 민간의 합작경영이 아닌 국가자본주의는 경제부흥을 위한 일시적인 구제조치라는 생각이 강하였다. 어쨌든 불황과 통제, 상공업의 합리적 조정 정책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국영 부문이 한층 확대됨과 동시에 민간 상공업의 국가 의존이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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