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이해 - 심훈에 대하여, 문학, 상록수, 필경사, 상록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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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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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문학의 이해
심훈에 대하여

1. 심훈의 문학
2. 상록수
3. 필경사
4. 상록문화제
1.심훈의 문학
심훈(沈薰, 1901~1936)은 소설가, 영화인으로 호는 해풍(海風), 아명은 삼준 혹은 삼보, 본명은 대섭(大燮)이다. 1901년 9월 12일 서울 영등포 노량진에서 출생해서 경기도 시흥군 신북면 흑석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3남 1녀의 막내로 자랐다.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 1919년 3.1만세운동을 맞이한 그는 만세시위에 적극 가담하였다가 왜경에 체포되어 4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으며 출감 후 상해(上海)로 이주, 1921년 항주(抗州)의 지강(之江)대학에 진학하여 3년간 수학한 뒤 1923년 귀국하였다.
이때부터 문필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신극 연구단체인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하였고 다음해(1924)에는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하는 한편 심대섭이라는 본명으로 시와 소설을 발표한 것이 그 시초이다. 1926년 동아일보에 영화소설 《탈춤》을 연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영화계에 투신, 이듬해에는 《먼동이 틀 때》를 원작·각색·감독하였다. 1930년에는 《동방의 애인》, 1931년에는 《불사조(不死鳥)》를 각각 조선일보에 연재하고 1933년에는 《영원의 미소》, 1934년에는 《직녀성》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했다. 1935년에는 농촌계몽소설 《상록수》가 동아일보 창간 15주년기념 현상소설에 당선되면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 이 소설은 당시의 시대적 풍조였던 브나로드 운동을 남녀 주인공의 숭고한 애정을 통해 묘사한 작품으로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 1981년에는 일본에서도 이 책이 번역·간행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가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소설로 당선될 당시 필명을 훈으로 개명, 작가로서 크게 부상되기 시작했다. 당선상금 500원 중 일부로 ‘상록학원’을 설립하였으며 1936년 의 영화화를 계획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포기하였다. 그는 이 문제작 의 출판 교정을 보느라 한성도서 주식회사 2층에서 기거하다 장티푸스에 걸렸는데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후 급서하였다.
2.
상록수의 내용을 보면, 영신과 동혁은 ○○신문사 주최의 농촌 계몽 운동에 참여하여, 신문사의 위로회 석상에서 보고(報告) 연설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학업을 마치고 동혁은 한곡리로, 영신은 청석골로 내려가 농촌 계몽 운동에 참여한다. 동혁은 농우회를 조직하고 회관 건립과 마을 개량 사업을 추진하나, 지주인 강도사의 아들 강기천과 당국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는다. 채영신도 < 상록수 원고 >
예배당을 빌려서 농촌 아이들에게 한글 강습을 실시하는 한편, 기부금을 모아 새 건물을 지을 계획을 하지만 일제의 방해로 괴로워한다. 갖은 어려움 끝에 영신은 과로와 맹장염으로 학원 낙성식 날 졸도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동혁이 영신에게 문병을 와 있는 동안 강기천은 농우회원을 매수하여 명칭을 진흥회로 바꾸고 회장이 된다. 이에 분노한 동혁의 동생이 회관에 불을 지르고 도망하자 동혁이 대신 수감된다. 출옥한 동혁이 청석골로 갔을 때 영신은 이미 죽어 있었다. 동혁은 영신을 장례지내고 산을 내려오면서 상록수들을 보며 농촌을 위해 평생 몸바칠 것을 다짐한다.
심훈의 상록수는 일제의 억압에대한 저항과 그당시 사람들의 배우고싶은 욕망, 그리고 청년들의 애국심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