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튼 프리드만 밀턴 프리드만의 통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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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튼 프리드만 밀턴 프리드만의 통화주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밀턴 프리드만은 1912년 뉴욕시에서 가난한 이민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나 20세의 나이로 러처스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뒤 1933년에 시카고대학교에서 석사를, 1946년 콜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전시에 미재무성의 조세연구국에서 복무하고, 위스콘신과 미네소타에서 잠시 재직한 것을 제외하곤 2차대전을 전후로 콜럼비아데서 오랫동안 재직한 뒤, 1948년 시카고대학교에 합류하여 1979년 은퇴할 때 까지의 전 기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1964년 베리 골드워터의 대통령 선거유세에서 자문역을 맡았지만 당선에는 실패했고 뒤이어 닉슨 대통령에게 조언을 주었다. 끝없는 소문에는 불구하고, 그는 결코 칠레 군사정권의 상담역으로 활동한 적이 없다. 그는 1967년 미국경제학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그 후 사망할때까지 캘리포니아 스탠포드의 후버연구소에서 특별선임연구회원으로 있었다.
2. 밀튼 프리드만의 업적
프리드만은 초기에 통계학을 배웠고 그의 첫 출판물들도 이 계통의 것이었다. 그는 1946년 사이몬 쿠즈네프와의 공공저인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자유전문직업의 소득(Income of Independent Professional Practice』(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1946)으로 이름을 날렸다. 뒤이어 40년대 말과 50년대 초반에 출판된 경제학 방법론, 마샬의 수요곡선, 그리고 소득의 한계효용 등에 관한 일려늬 유명논문들을 담고 있는 『실증경제학논집(Essys in Positive Economics)』(University of Chicagi Press, 1953)을 1953년에 출판하였다.
이처럼 일찍이 전문가로서의 명성을 떨침으로써 그는 미국경제학회에서 1951년 존베이츠클라크메달을 수상하였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39세였다. 그러나 소비함수를 현재소득대신 평생소득(lifetime income)에 연관시킴으로써 케인즈적 소비함수개텸을 재해석했던 『소비함수이론(theory of the Consumption Function)』(Princenton University Press, 1957)에 의해 그의 명성은 의심의 여지없이 확립되었다. 이 책은 자료를 독창적인 방법으로 솜씨있게 다루었으며 분명 상충되는 증거들을 잘 조화시켰기 때문에, 현대 계량경제학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되어야만 한다. 『자본주의와 자유(Captilism and Freedom)』(University of Chicagi Press, 1962)는 대중적 경제학을 집필할 수 있는 프리드만의 타고난 재능을 드러내 주는 것으로, 시장기구가 이 시대의 거의 모든 현저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의용군, 자유변동환율, 교육증서(educational vouches) 등과 같은 개념들을 읽기 쉬운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부인 로즈 프리드만(Rose Friedman)과 공저한 『어느 경제학자의 항변: 정치경제학에 대한 기고들(An Economists Protest: Columns in Political Economy)』(Thomas Horton and Daughters, 1975)과 『선택의자유, 개인적 성명(Free to Choose, A Personal Statement)』(Harcourt, Brace, Jovanovitch, 1980, Penguin, 1980)의 두 권은 응용경제학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프리드만이 지니고 있는 절대적 천재성에 대한 추가적 예를 제공해 주고 있다.
3. 밀턴 프리드만의 ‘통화주의’
프리드만의 통화주의는 슈바르츠(A.J.Schwartz)와 공저한『미국의 통화역사, 1867-1960』(Princenton University Press, 1963)의 출판으로 말미암아 그 권위를 인정받았다. 이 채겡 등장하는 많은 발견들 중에서도,특히 1930년대의 대공황이 거의 연방준비제도의 서투른 통화정책의 결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개념의 공표는 매우 놀라운 것이다. 이어서 그는 미국경제학회 회장사 「금융정책의 역할」(American Economic Review, March 1968)을 통하여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자연실업률(natural rate of Unem[loyment) - 영구적 인플레이션을 불러일으키지 않고도 유지될 수 있는 최소한의 실업 수준 - 이라는 개념을 경제학자들에게 소개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정통 케인즈학파 이론을 가지고는 설명하기가 힘들며, 프리드만은 케인즈학파 경제학이 파탄에 이르렀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시도로서 이 기회를 포착하였던 것이다. 그의 설명의 중심요소는 가격인플레이션이 임금인플레이션에 달려 있으며, 또 임금인플에이션은 결정적으로 임금소득자들이 가격수준의 미래변화에 대하여 가지는 기대에 달려있다는 견해이다. 일단 노동자들이 일정한 가격인플레이션율을 기대하게 된다면, 팽창적 재정정책으로 실업수준을 감소시키려는 정부의 어떠한 시도도 화폐임금이 상승하도록 압박을 가함으로써, 실업의감소를 중립화시키고 한편으로는 한층 많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게 된다. 즉, 장기 필립스 곡선은 노동시장이 효과적으로 청산되는 실업률에서 수직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 비율은 노동의 유동성에 대한 장애물, 일시적 해고제한 등과 같은 거시경제정책에 의해 신속하게 변경될 수 없는 실질요소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이를 자연율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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