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발전원인 분석

 1  한국경제의 발전원인 분석-1
 2  한국경제의 발전원인 분석-2
 3  한국경제의 발전원인 분석-3
 4  한국경제의 발전원인 분석-4
 5  한국경제의 발전원인 분석-5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한국경제의 발전원인 분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한국 경제는 1960년대부터 외자의존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추진하여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고, 그 결과 한국은 신흥공업국가의 선두주자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한국 경제는 현재 세계13위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한국이 이렇게 아시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원인과 배경이 어디에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압축 성장의 배경
한국의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의 요인을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 외자도입, 수출 공업화 정책에서 찾고 있는데 과연 그러한가. 후진국들은 시기나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정부 주도로 외자도입에 의한 수출 공업화정책을 추구했다. 대부분의 후진국들이 유사한 공업화정책을 추구했음에도 신흥공업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대만과 한국 정도에 그친 것은 이들 국가에 공업화를 개시할 당시 급속한 공업화에 유리한 조건이 성숙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세계 체제적 조건으로 1960, 70년대 당시의 대외적 조건이 후진국의 수출 지향적 공업화정책 수행에 특별히 유리했다. 세계경제가 전례없는 고도성장과 무역의 확대를 경험하고 있었고, 다각주의에 기반을 둔 안정적인 세계경제질서가 형성되고 GATT체제가 선후진국간의 비대칭적 관계를 허용하였고, 전후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적인 우위 하에서 자유무역,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일부 후진국의 중심부로의 진입을 저해하지 않았다. 선진국들은 후진국들에게 일반특혜관세라는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렇게 수출 지향적 산업화에 유리한 조건을 포착할 수 있었던 나라는 소수에 불과했다. 단순 노동집약적 공산품의 생산능력을 갖춘 개도국은 많지 않았고, 이들 나라 중 적기에 정책을 전환한 나라는 적었기 때문이다. 수출 지향적 공업화는 몇몇 개발도상국들에 대해서만 실행 가능한 발전전략으로서 후진국 전부의 상향이동은 불가능했고, 개별 국가의 상향이동만 가능했다.
둘째, 국내적으로는 농지개혁에 의한 지주계급의 몰락과 자본가계급의 육성 촉진, 다수 농민의 자작농화, 귀속재산 불하에 의한 재벌의 형성 촉진, 한국전쟁에 따른 노동자 농민의 권리억압과 희생이 고도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했다. 농지개혁은 지주계급의 몰락과 자본가계급의 창출을 촉진함으로써 고도성장의 조건을 제공했다. 농지개혁으로 지주계급은 토지를 상실하고 지가증권을 받았는데 상인들과 자본가계급은 이 지가증권을 사들여 귀속재산을 불하받는 등 자본을 본원적으로 축적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지주들은 농지개혁 후 자본가계급으로 전신하는데 실패하였으나 그들이 소유하던 자산은 산업자본으로 전환되어 그 뒤에 자본주의화에 밑거름이 된 것이다. 또 농지개혁을 통하여 지주계급은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국가가 자본가계급에 유리한 공업화 정책을 보다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농지개혁으로 자작농이 된 농민들은 더 이상 소작료를 내지 않아도 됨으로써 자녀들을 교육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종속적인 고도성장의 원동력을 양질의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이라고 하는데, 이들 노동력은 대부분 농가의 자녀들이었다. 1960년에 1인당 GNP가 90달러인 국가에서 5~14세 아동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약 22%였으나 한국은 59%로 2배 이상으로 높았다. 1960~65년의 15세~19세 중등학교 취학률은 약 27%로 1인당 GNP가 380$인 국가의 평균취학률보다 높은 수준이었고, 고등교육기관의 취학률도 1인당 GNP가 한국 보다 3~4배 높은 나라들과 대등한 수준이었다. 이렇게 1960년대 이전에 교육받은 노동자들이 10~15년이 경과된 1960년대 말과 70년대에 경제성장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농민에 대한 저곡가를 통한 수탈, 조세수탈과 인플레이션에 의한 수탈로 거둬들인 재원을 재벌들에게 특혜로 제공함으로써 자본주의 발전이 촉진되었다.
해방 후 한국에서 동맹세력으로서 자본가계급을 육성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작용하여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귀속재산을 헐값으로 불하하였다 .귀속재산 불하의 의의는 일제하 상인자본가세력을 매판관료독점적 산업자본가계급으로 변신시킨데 있었다. 현재의 50대 재벌 가운데 13개 재벌이 귀속재산 획득을 통하여 재벌이 되었다. 이 재벌들은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과정에서 공업화의 주역으로 역할한다.
또한 한국전쟁은 자본주의 발전에 유리한 계급역학관계를 결정적으로 조성했다. 전쟁과 농지개혁을 계기로 전근대적인 신분관계가 일소됨으로써 자유로운 노동력이 창출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진보적 사회운동 역량이 괴멸됨으로써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을 일방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내전과 분단에 의한 저항세력이 약화는 외국자본이 활동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한 것이다.
3. 압축성장의 본질과 내용
1) 국가주도 자본주의화
1960~70년대 압축성장의 본질은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의 억압에 의한 저임금 저농산물 가격체계를 기반으로 한, 대외종속과 국가주도의 자본의 원시적 축적과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자본의 원숙기 및 산업혁명기에는 국가의 폭력에 의한 자본의 형성과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가 일반적이었다. 여기에 후진국은 선진국의 헤게모니 하에서 공업화를 추진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그러한 특징에 더해서 국가의 경제 개입이 훨씬 심화되었다. 시장의 발달이 미약한 상황 속에서 시장에 의한 자원 배분과 자본축적 촉진기능이 취약한 조건 속에서 국가가 앞장서서 자본축적을 촉진했고, 시장을 형성해 간 것이다.
후진국 경제발전 과정에서는 경제통제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계획의 도입이 필수적이었다. 후진국의 경제발전은 기존의 체제를 유지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고 기존 균형을 파괴하고 기존 경제구조를 질적으로 변혁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경제구조의 질적, 구조적 변혁은 기존 사회질서와 가치기준의 변혁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것이므로 이를 사기업이나 개인에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뿐만 아니라 공업화의 전제가 되는 자본동원 또한 취약한 민간자본에 의존할 수 없으며, 투자계획에 있어서도 공업화의 기초가 되는 사회 간접자본 기간산업 등과 같이 투자의 우선순위가 부여되어야 할 부문은 자본소요액, 자본회임기간, 이윤율 등의 문제로 인해 민간자본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므로 경제활동에 대해 정부가 직접 개입해야 할 범위는 확대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라 후진국에서는 계획목표의 달성수단이 간접적이고 유도적인 것보다는 정부에 의한 강제적 자본동원 및 투자 등 직접적 수단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