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의 칼리 피오리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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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의 칼리 피오리나 리더십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카리스마 넘치는 ‘철의 여인’으로서 세계 최고의 여성 CEO 칼리 피오리나는 전통의 휴렛팩커드(HP)를 세계적인 IT 기업으로 대전환시킨 CEO 이다
휴렛팩커드가 새 CEO를 발표한 1999년 7월 17일, 뉴욕 증시에서 HP와 루슨트테크놀러지의 희비가 엇갈렸다. 루슨트로부터 영입된 칼리 피오리나 때문이었다. 두 회사의 주가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피오리나는 어떤 인물일까? 칼리 피오리나는 1954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나 스탠퍼드 대학에서 중세사를 전공한 후 메릴랜드 대학에서 MBA를, MIT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 AT&T에 말단 영업사원으로 입사하여 탁월한 추진력과 천부적인
언어감각을 발휘, ‘철의 여인’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1996년에는 AT&T에서 분사한 루슨트테크놀러지를 성공적으로 출발시켰고, 1998년 루슨트 CEO로 취임한 후 과감한 경영전략과 미래지향적 구조개편으로 주가를 12배 상승시키는 등 최고경영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같은 업적으로 같은 해 《포춘》이 ‘최고의 여성 CEO 50인’을 선정하는 데 당당히 1위로 뽑혔다. 세계 주요 컴퓨터 업계 최초의 여성 CEO 피오리나가 100:1이라는 엄청난 경쟁을 뚫고 HP의 새 CEO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전략전 비전의 결여와 ‘대기업병’인 무기력,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날카롭게 진단했기 때문이다. ‘HP 방식’에 대해서는, 방식은 낡지 않았지만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HP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HP의 초기 이념인 ‘할 수 있다’ 정신에 비추어, 그 시절로 돌아가 근대적 변혁을 이루어냈던 힘을 다시 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또한 평화적인 권력의 분산이 아니라 단결된 전략과 응집력이 필요함을 간파했다. 청중을 휘어잡는 언어의 마술사 피오리나는 아주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독특한 단어를 넣은 풍미 가득한 언어를 구사하는 편으로, 비서들은 그녀가 했던 인상 깊은 말들을 모아 명언집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일은 전통의 HP에서는 생소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정말 기분 짱이에요!(I’m jazzed about that!)”나 “충분히 완벽해(perfect enough)”가 있다. 후자는 최고의 찬사에 속하는 말로, 경쟁사보다 충분히 앞선 시점에 제품을 내놓아야 할 경우에는 세부사항에 연연해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피오리나가 루슨트의 글로벌 서비스 부문 최고책임자로 있을 때, 루슨트가 인수한 다른 그룹의 저질 기숙사 문화 때문에 고민한 적이 있다. 그녀는 수천 명의 영업사원 앞에서 연설하면서, 두 회사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말과 함께 “우리의 그것도 누구 못지 않게 큽니다!”라면서 재킷을 벗었다. 놀랍게도 그녀의 바지 가운데 부분이 남자의 그것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청중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고, 이후 루슨트의 문화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회사를 떠났다. “리더십은 실행이다(Leadership is performance)”피오리나의 명성에 한 가지 더 보태는 것은, 그녀가 성공을 위해 매진하는 워커홀릭이 아니라 부하직원의 성공과 기쁨,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루슨트 CEO로 발탁되었을 때는 최초로 팬클럽을 가진 경영자가 되었다.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이 그녀의 저돌적인 경영방식에 의해 지어진 것이면, 대중 스타에게나 있는 ‘팬클럽’은 그녀의 따뜻한 인간미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HP로 자리를 옮기고 가장 먼저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기업 이미지 광고를 제작했다. 자신이 HP 창업자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뜻을 공고하기 위해 창업의 바탕이 되었던 창고를 광고에 등장시킴으로써 창업자의 전통과 현대적 감각의 경영방식을 접목시키겠다는 뜻을 펼쳐 보인 바 있다. 결과적으로 이 광고는 HP 직원이라는 자부심을 북돋워주는 계기가 되었다.“한계는 없다. 도전을 즐겨라!”이제까지 HP는 전통적인 스타일로 미루어 완벽하지 않으면 절대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는 일념으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장인정신은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장의 생태를 따라잡지 못했다. ‘완벽’이라는 그물에 걸려 적기를 놓치고 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심지어는 신생 기업들의 광고 전략에 따라가지도 못했다. IBM 회생의 시기에 루 거스너가 시장의 흐름에 주목하도록 경영혁신을 펼치는 시기에도, HP는 상품생산에 완벽을 기했다. 경영자들 역시 최고의 상품만을 추구했고, 시장에 따라가는 기업의 경박성을 한탄했다. 시장은 갈수록 변하고, 적기를 잡지 못한 기업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장인정신과 각 생산라인의 자율성을 중시한 것이 매출에 영향을 미친다면, 경영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온 것과 같다. 60년 전통의 보수적인 HP가 전격 발탁한 최초의 아웃사이더 CEO에게 지워진 짐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창업자 휴렛과 팩커드가 세운 HP 방식은 시장보다는 기술을 우선으로 하여 완벽한 테크놀러지 구현에 집중해 있었고, 사업부문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기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HP의 전통적인 기업문화는 경영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HP 재건, CEO 칼리 피오리나의 결단2001년 9월, 피오리나는 경쟁사 중 하나인 컴팩 컴퓨터와의 인수합병을 결정했다. 당장의 수익보다는 업계 최고가 되기 위해 기업의 생존을 걸었던 것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합병계획이 발표되자, HP 주식의 수업으로 사회사업을 하고 있는 휴렛 재단과 팩커드 재단의 창업자 후손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후손 중 유일하게 HP의 이사로 있던 월터 휴렛은 주주들의 의사를 묻는 위임장경쟁을 실시하자는 의견을 내세웠다. 초기에는 이사회 역시 찬성과 반대로 각기 의사를 달리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피오리나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이사들이 늘어났다. HP 주식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두 재단(휴렛 재단, 팩커드 재단)과 월터 휴렛의 반발은 결국 위임장경쟁을 야기했고, 주주들은 피오리나와 이사회에 표를 던졌다.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월터 휴렛은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결국 월터 휴렛과 피오리나는 ‘휴렛 대 휴렛팩커드’라는 이름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고, HP 재건을 위한 피오리나의 결단과 정당성에 재판정 역시 동의했다. 2002년 9월 합병은 성사되었다. 그러나 피오리나는 2005년 2월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사임했다. 피오리나는 2002년에는 주주와 중역들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강행한 컴팩 인수와 이후 주가 하락, 미래 전략을 둘러싼 이사회와의 이견 때문에 사실상 축출되었다.
칼리 피오리나의 성공요인
1. 다독과 문장연습 (후에 기획서나 프레젠 테이션작업에 큰영향을 줬음)
2. 여성이라는 편견을 갖지 않음
3. 글로벌 리더쉽(특히 아시아 태평양 협상에서 많은 공을 세움)
4. 정직과 신뢰
5.끈임없는 혁신과 변화
6. 열정적인 자신감
7. 패션감각(최대한 비싸면서 파격적이게- 패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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