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인권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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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스리랑카 인권단체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스리랑카에 있는 Right to Life라는 인권단체는 1989년 스리랑카에서 정치인들간의 권력다툼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그 과정 속에서 희생된 무고한 시민들을 위한 실종자단체로서 역할을 하고 매년 10월 27일 실종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 단체는 스리랑카의 자얀티라는 여성이 Right to Life 라는 통합조직아래 크게 실종자, 인권,노동자 세부분으로 나눠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그녀의 이러한 활동은 국내와 국외로부터 높은 귀감을 샀으며 특히 2003년에는 518 기념재단이 주관한 제4회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표창을 받았다. 자얀티의 인권상 수상 후 518기념재단과의 연계로 매년 518 기념 재단의 재정지원아래 개최되고 있다. 이들은 광주 518민중항쟁을 시민들이 부당한 권력에 맞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 낸 성공적 사례로 생각하여 많은 것을 광주 시민들로부터 배우고자 한다.
비슷한 정치적 과정속에서도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의 위상을 높이사는 Right to Life 에 대하여 89년도에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개요와 이 단체의 역할과 활동을 적어 스리랑카의 인권단체 활동의 노력으로 계속 자행되고 있는 실종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실종자 문제해결을 함께 해결함으로 하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Ⅱ. 본론
1989년부터 1992년 스리랑카에서는...
1989년은 스리랑카의 가장 격심한 반란으로 특징지워진다.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 하려는 젊은이들이 조직한 JVP(국민자유전선)와 UNP(통일국민당)정부, 두 정당간의 권력다툼으로 인해 1989년~1992년 스리랑카는 수 많은 정치인들을 비롯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양으로 사라져갔다.
UNP정부는 제2의 정부라 불리면서 남부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JVP를 제압하기 위해 스리랑카 북부 LTTE(타밀엘람해방호랑이)지역 내의 정부군을 남부로 옮기고자 하였고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인도정부로부터 평화유지군 성격의 인도군 파견을 요청하는 협약서에 서명했다. 또한 인도정부의 압력에 따라 남과 북으로 나뉜 싱할리 와 타밀간의 인종분쟁에 대한 해결로서 도의회가 제출한 LTTE의 자치를 인정하는 해결방안에 동의했다. 이러한 UNP정부의 결정은 인도제국화를 두려워하고 타밀 민족에게 주어진 특권에 반대하는 JVP에게 UNP정부에 대한 반기를 들게했다. 그리고 이는 1989년의 스리랑카 대통령선거전의 쟁점이 되었다.
JVP는 시민들에게 UNP의 정책실패, 정치인들의 부패,자본주의의 비판과 동시에 잘못된 국가통치를 알렸다. JVP는 정부지지자들과 상대당의 주요 간부를 죽이고 또한 시민들이 JVP가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거나 듣지 않으려 하면 그들 역시 살해 하거나 납치했다. 예를 들어 상점의 문을 닫지 않는 상점주인, JVP가 명령한 항의의 날에 버스를 운전한 버스운전사들이 살해당했다.
이에 정부도 역시 같은 수단으로 보복했다. 군과 경찰은 JVP에 지지를 보낸 젊은이 들을 분간하기 시작했고 마을 사람 중 JVP 지지자를 밀고한 자에게 돈을 주거나 이를 빌미로 마을 사람들을 협박했다. 그 후 그들의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경찰서에 감금 하거나 군캠프에 연행하여 고문하고 죽였다. 납치당한 사람 중 일부는 목이 베인 체 길가에 보여져 사람들로 하여금 겁을 먹게하고 그들의 사체는 불에 태워졌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사체를 옮기려 하거나 바라보고 있으면 JVP지지자로 여겨 역시 납치 당했고 심지어는 JVP지지자와 비슷한 이름을 가졌거나 그들의 정치적 활동과 관계 없이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해 납치하기도 하였다. 군고위간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질투로 그것을 납치하는 것에 이용하기도 하였다. UNP정부와 JVP모두 살해를 정당화하는 환경을 조성하여 서로의 지지자로 생각되는 사람들을 죽였고 그 기회를 이용해서 반대자 또한 죽였다.
살해와 실종을 규명하기 위해 세 개의 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몇년 후 대통령직속위원회는 대통령의 요구에 의해 직무를 완수하지 못한채 해체됐다. 대통령은 스리랑카에서 진행중인 LTTE와 스리랑카 정부간의 내전으로 인해 범죄자를 처벌할 기회를 잃은 것이다. 북쪽의 전쟁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군 고위 간부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나 그들 중 일부는 살해집단의 구성원이였기에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하면 그것이 전쟁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정부는 모든것에 대한 경찰력 을 유지하기 위해 위원회가 독립적기관이 되는 법률구조 개정에 동의하지 않고 설령 정부가 기소를 원한다 하더라도 법무부는 사망자의 수를 조사할 능력이 한정된 예산 과 변호사의 수로 인해 제한되어 실종의 기소는 거대한 자원의 증가를 수반하기에 PA 정부는 그들이 약속한 것을 이행할 수 없었다.
Jayanthi Dandeniya는 실종자 가족 중 한사람으로 실종자회를 담당하고 있으며 현재 인권활동가로서 대통령위원회에 의한 조사를 통해 실종자 가족에세 혜택이 돌아 갈 수 있도록 투쟁하고 있다.
쟈얀티 단데니야는 스리랑카 남부의 마타라(Matara)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으며, 그녀는 28세 섬유산업단지내에서 기계공으로 일 하기 시작했다. 그 후 그녀는 다른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라니쓰(Ranjith)를 만났고 89년 12월에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그녀는 그와 결혼하여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꿈꿨다. 그러던 어느날, 약혼자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납치되어 실종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약혼자를 찾기위해 친구들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고 지역내의 모든 경찰서를 방문하였지만 답은 없었다. 후에 유해는 교차로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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