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술사조 몬야 요이고분아스카시대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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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 미술사조 몬야 요이고분아스카시대의 미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지상에 있던 많은 유물이 사라져 땅속에서 출토되는 토기와 토우(土偶)들을 통해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공예에 속하는 토기에서는 그 기형의 처리나 표면장식을 통해 미적 표현을 살필 수 있는데, 조몬 시대[繩文時代]의 조몬 토기는 특히 그 시작을 BC 10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대를 갖고 있다. 약 1만 년에 걸쳐 계속된 조몬 토기는 기간이 길어 보통 6 단계로 나누어 양식적 변천을 논한다. 초창기에는 광주리를 모방한 듯한 밑이 둥근 환저형(丸底形) 토기가 나타났으며 조기(早期)에는 한국의 암사동 토기와 유사하게 밑이 뾰족한 첨저형(尖底形)이, 그다음 전기(前期)에는 바닥이 편평한 평저형(平底形) 토기가 각각 나타나 한국과 유사한 전개를 보였다. 그러나 중기(中期)에는 화염문(火焰文) 토기라 하여 조형성이 매우 뛰어난 이색적인 토기가 등장했다. 이후 후기와 만기(晩期)를 거치면서 장식적·조각적 성격이 약해지면서 순수 기형에 충실하게 되었다. 토우에서도 헬멧과 선글라스를 쓴 듯한 차광기(遮光器) 토우가 나타나 일본미술의 시작이 중국이나 한국과 차이가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야요이 시대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야요이 시대[彌生時代]는, 대륙에서 전래된 벼농사와 청동기 사용, 그리고 토기 제작에서의 물레 사용 등으로 조몬 시대와는 문화적으로 크게 변모된 시기였다. BC 300년에서 AD 300년에 걸친 이 기간의 미술로는 토기와 동탁(銅鐸)이라고 하는 청동기 표면에 가한 회화적 표현을 들 수 있다. 토기는보통 전기·중기·후기로 나누어 그 변화를 설명하는데 물레를 사용하므로 기형이 좌우 완전 대칭인 것이 특징이다. 기벽도 얇아지고 표면장식도 간략해져 보다 순수한 기형미를 추구하는 것이 한국의 무문토기와 유사하다. 또 이 시기에 많이 나타나는 동탁 표면에서 있는 선각(線刻) 부조도 한국의 청동기 유물에서 보이는 선각 장식들과 내용이나 기법이 유사하여 상호 영향관계를 엿볼 수 있다. 동탁에 보이는 반추상적인 선각 표현은 청동기 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표현법으로 농경과 수렵에 관한 내용이 주종을 이룬다. 표면에 보이는 유수문(流水文)과 같은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들은 이후 일본미의 한 원류가 된다.
고분 시대
4~7세기경 일본에 많은 거대한 고분들이 출현하게 되는데 이를 근거로 이 시대를 고분시대(古墳時代)라고 한다(→ 무덤). 이 시기는 한국의 삼국시대에 해당하는데 철기 사용, 신라나 가야 토기와 유사한 스에키[須惠器]의 출현, 그리고 많은 금제 장신구 등은 한국의 영향을 시사해준다. 한반도에서 기마민족이 일본열도에 건너가 세력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미술은 건축을 예로 들면 소위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특이한데 한국에 조형(祖型)이 있다고는 하나 규모에서 차이가 크고 주변에 큰 호(壕)를 파는 것이 다르다. 이러한 무덤 주위에는 하니와[埴輪]라고 하는 일종의 토용(土俑)이 세워졌는데 불교조각이 나타나기 이전의 순수 일본조각으로서 의의가 있다. 또 후쿠오카[福岡]와 구마모토[熊本]를 중심으로 한 규슈[九州] 지방에는 장식고분(裝飾古墳)이라고 하는 벽화고분들이 나타나 대륙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벽화 내용이나 표현기법으로 볼 때 일본의 장식고분은 대륙적인 요소와 일본적인 독특한 표현법이 결합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기하학적 문양이 많고 구상적인 표현에서도 중국이나 한국에는 보이지 않는 형태가 많이 보인다.
아스카 시대
아스카 시대는 대개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6세기 중엽부터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이 행해지기 이전인 7세기 중엽까지로 잡고 있다. 이 시기에는 불교 전래에 따른 불교문화·불교미술이 발달했다. 일본 고유의 신도문화(神道文化)와 대체되어 불교문화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는 한반도 귀화인계인 소가 씨[蘇我氏] 집안과 다른 일본계와의 치열한 정치적 투쟁 속에서 소가 씨가 승리함으로써 성취된 것이며 따라서 아스카 시대의 미술 문화 속에서 한국과의 친영성(親迎性)을 쉽게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스카 시대 미술에서는 중국의 육조시대와 한국의 삼국시대의 기법·양식을 많이 느낄 수 있는데 대륙의 선진문물이 속속 들어와 기존의 일본풍을 혁신시킨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주요미술품으로는 불교조각품들을 들 수 있다. 이들 조각품은 호류사[法隆寺] 일대에 집중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시기의 불상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도리[止利] 양식으로서 호류사 금당에 있는 금동제 석가삼존불상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쇼토쿠 태자[聖德太子]의 명복을 비는 뜻에서 623년에 도리에 의해 만들어진 이 불상은 중국 북위시대(北魏時代) 불상 양식을 기초로 만든 것으로 좌우대칭 구조에 다소 도식적인 옷처리, 긴 얼굴, 은행알 같은 눈매와 초생달 같은 입매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양식의 불상들이 다수 전하는데 아마도 도리와 그의 공방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믿어지며 호류사 금당과 보장전 안에 전시되어 있다. 도리 불상과 양식이 다른 것으로 호류사의 유메도노[夢殿]에 있는 관음보살과 보장전 안의 구다라[百濟] 관음을 들 수 있다. 특히 구다라 관음은 이름 그대로 백제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백제인의 탁월한 조형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위 양식을 기초로 하면서도 유려한 선처리와 날씬한 몸매는 백제의 세련된 미의식을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은 세련미는 호류사 바로 옆에 있는 주구사[中宮寺]나 고류사[廣隆寺]에 있는 반가사유상들에서도 느껴지는데 보다 일본적인 미를 추구한 야추사[野中寺]의 반가사유상과 비교해볼 때 이 작품들이 한국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유추된다. 이 시기의 다른 중요한 미술품으로는 다마무시노즈시[玉蟲廚子]를 들 수 있다. 예불용 사리함인 이 유물에는 표면에 그림이 많이 그려 있어 회화의 귀중한 예를 전하고 있다. 석가의 전생설화 중 두 장면이 그려졌고 그밖에 수미산도·공양도·보살도 등이 있어 7세기 회화기법을 엿볼 수 있다. 아스카 시대의 미술품은 대개 중국 육조시대와 한국 삼국시대의 고졸(古拙)한 형식미의 또다른 변형을 잘 보여주며, 중국이나 한국에서 부족한 유례(遺例)를 많이 보충해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나라시대 개요 - 아쿠시사의 동탑, 도다이사의 홋케도, 호류사의 유메도노(몽전:꿈의 전각), 일본 최고의 보물창고 쇼소인(정창원)765년 도다이사(동대사)에 세워짐.일본에서 나라에 수도가 있었던 710~784년을 일반적으로 나라 시대[奈良時代]라고 부른다. 수도가 나라로 옮겨진 710년을 기점으로 하여 그 연호를 따서 670~710년을 하쿠호 시대[白鳳時代], 710~784년을 덴표 시대[天平時代]라고도 한다. 이 시기는 한국의 통일신라시대 전반기에 해당하며 7~8세기 동양 전체가 그러하듯이 중국의 문물과 제도의 영향이 커 미술에서도 당풍(唐風)이라고 하는 큰 흐름의 영향을 많이 받던 때였다. 이 시기에는 중앙집권체제가 갖추어져 천황이 실권을 쥐었으며 불교가 성해 불교문화와 미술이 꽃을 피웠다. 따라서 왕권의 상징으로서 거대한 사찰이 조영되기도 했는데 나라의 도다이 사[東大寺]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전과 달리 나라 시대부터는 건축물과 함께 많은 조각품과 회화작품이 전해지고 있어 당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우선 건축물로는 호류 사의 금당, 5층탑, 중문 등이 8세기초의 원형을 전하고 있는데 이들은 중국 육조시대의 건축양식과 척도(東魏尺)를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밖에 야쿠시 사[藥師寺] 3층탑, 도다이 사의 산가쓰도[三月堂]·쇼소인[正倉院], 도쇼다이 사[唐招提寺] 금당 등이 동양 전체에서도 드물게 7~8세기의 건축미를 보여준다. 또 조각은 대개가 불교조각인데 나라 시대 전반기에는 초당(初唐)양식이 성행했으며 후반기에는 성당(盛唐)양식이 풍미했으나 일부 기법이나 표현에서 일본 특유의 성격이 드러나고 있다. 기법에서 건칠(乾漆)을 많이 쓴 것과 신장상(神將像)들의 얼굴이 매우 사납다는 점 등이다. 야쿠시 사의 삼존불이나 성관음상이 당 양식을 대표하며 고후쿠 사[興福寺]의 팔부중상(八部衆像)은 일본이 새롭게 성취한 우아한 당풍을 잘 보여준다. 회화의 예로는 하쿠호 시대의 것으로서 호류 사 벽화와 다카마쓰즈카[高松塚] 벽화를 들 수 있는데 전자는 애석하게도 화재로 소실되었다. 모두 8세기초의 귀중한 유산으로서 당시의 국제적 문화교류를 잘 말해주며 후자는 고구려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후기에는 불화들이 많이 전하고 있어 불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들이다. 에인가쿄[繪因果經], 법화당 근본만다라(根本曼茶羅) 등은 고식을 잘 전하고 있으며 쇼소인의 공예품에 그려진 그림들도 당시의 국제적 교류를 잘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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