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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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애니메이션의 어원은 라틴어의 anima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명, 영혼, 정신 등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그림에 사람이 인위적으로 생명을 불어넣어 움직일 수 있는 동적인 그림으로 살려낸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우수한 매체를 통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외의 다른 매체 특히 영화의 경우에도 움직임을 통해서 이미지를 전달함에 있어 매우 우수한 매체임에 틀림이 없으나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 그표현의 한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좋은 장면을 연출 하기 위해 추운 바다속을 들어가야 하고 리얼한 자동차 충돌씬을 찍기 위해선 수많은 자동차들이 필요하게 됩니다. 좀더 큰 스케일의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선 수많은 인력과 사람들의 고생이 뒤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러한 것들의 표현에 있어 어떠한 장애도 받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상상만 하면 이루어 진다 는 것이다. 물론 최근의 영화산업의 기술적 발전으로 인해 영화에서도 거의 모든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적인 발전에서도 절대 빠질수 없는 것이 애니메이션 기법인것입니다. 실제 거의 모든 영화에서 3D 애니메이션 기법이 적지않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애니메이션이란 움직이는 그림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과 이루고 싶었던 꿈을 아름답게 표현해 주는 우리의 친구인 것입니다.
애니메이션의 종류
애니메이션에는 크게 3종류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그림 애니메이션, 모델 애니메이션, 그리고 컴퓨터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림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가장 많이 쓰이는 셀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만 알아보겠습니다. 셀 애니메이션은 주로 디즈니메이션에서 사용되는 풀 애니메이션과 저패니메이션에서 사용되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풀 애니메이션은 1초에 24프레임을 모두 그림 24장으로 완전히 그려내는 방식으로서, 월트 디즈니의 완벽주의가 만들어 낸 제작방식입니다. 그래서 풀 애니메이션은 제작기간이 장기화되고 거대자본이 요구됩니다. 한편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은 움직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캐릭터의 일부 동작과 키 포즈 에 해당하는 움직임만을 골라 그려 1초당 약 1∼12장 정도의 수준으로 셀 을 그려 내는 애니메이션 제작방식이다.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은 풀 애니메이션에 비해 빠르고 경제적으로 제적할 수 있기 때문에 TV 시리즈 애니메이션 제작방식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철완 아톰으로 알려진 저패니메이션의 대부인 데즈카 오사무는 월트 디즈니의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코믹스들도 애니메이션으로 전환시켜 볼 것을 희망하게 되었고, 결국 제작자본의 한계와 전문 인력의 부족을 리미티드라는 기법으로 해결하였다. 하지만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제작기법은 TV 시리즈물에는 적당하지만, 극장용 장편에서는 사용하기에 어렵고, 작품의 질적 경쟁에 있어서는 위험성이 높다.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일본은 애니메이션 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애니메이션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고 그만큼 유명한 애니메이션도 많다. 미야자키 하야오, 오시이 마모루, 안노 히데야키, 이 셋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본다면, 이웃의 토토로, 미래소년 코난,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붉은 돼지, 천공의 성 라퓨타,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등이 있고,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으로는 인랑, 공각기동대 등이 있고, 안노 히데야키의 작품에는 나디아, 에반게리온 등이 있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에서 인지도가 높은 작품 몇개를 다루겠다.
-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유러시아 대륙의 서쪽 변두리에서 발생한 거대 산업문명은 1천 년 뒤에 절정기에 달해 마침내 극격한 쇠퇴를 맞게 되었다. 불의 7일 간이라 불리는 전쟁으로 도시들은 유독물질을 퍼뜨려 붕괴되고 고도로 발달한 기술 체계는 손실되어 지구의 대부분은 불모의 땅이 된 것이다. 나우시카는 이 같은 파국을 거친 인류의 황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구의 상당 부분은 불모화된 대지에 유독가스를 내뿜는 거대 균류가 번식하는 사해로 변모되었고, 남은 부족들은 여전히 파괴와 복수만을 불러일으킬 전쟁을 일삼는다. 페지테의 광산 도시에서 발견된 거신병(불의 7일을 가져온 거대 생체 로봇)을 빼앗기 위해 트루메키아의 군대는 부족을 몰살하고, 토귀의 부족은 대왕충을 유인해 이들에 맞선다. 누군가 인공적으로 사해의 독균을 배양해 퍼뜨리고, 황제의 혈족들은 권력을 위해 형제와 자식을 도륙한다. 바람을 동력으로 자연을 지키며 살아가는 바람계곡의 소녀, 나우시카만이 이 혼돈의 아마게돈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구도는 오랜 연재 기간 동안 몇 번의 굴곡을 지나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화하며 더욱 난해하고 복잡해진다. 그것 자체가 그 시간 동안 미야자키가 겪은 세계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을 터이다. 그런데 흔히 미야자키표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때 예측하는 따뜻하고 동화적인 세계는 여기에선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파국 이후의 미래 세계라니 미래소년 코난 정도의 유머넘치는 모험 정도라고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주변은 온통 독성 물질로 가득찬 사해, 폭탄에 팔과 다리가 툭툭 잘리는 전투가 계속되고, 병사들은 오염된 공기를 들이마시며 죽어가고, 나우시카는 그런 병사의 입에서 더러운 피를 빨아내고 있다. 이웃의 도토로나 붉은 돼지는 물론, 84년판 애니메이션 나우시카를 보더라도 미야자키에게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예측하긴 어려울 것이다.
- 천공의 성 라퓨타
[ 걸리버 여행기]의 일부로부터 아이디어를 가져온 는 미야자키의 복고주의적 역사관을 반영하며 공상과학적이고 신화/전설적인,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배경 위에서 미야자키의 상상력이 펼쳐진 작품이다. 첨단과학의 결정체적 존재인 라퓨타를 통해 미야자키는 과학의 위험을말하지만 사용주체인 인간에게 더 많은 결정 가능성을 부여하며 희망을 남긴다. 한편, 미야자키 스스로에 의한 자신의 이전 작품의 종합이며, 인류문화의 이중성과 부조리에 대한 지적을 담은 작품이기도 하다. 지역과 시대를 알 수 없는 어느날 밤, 구름 속을 가르며 날아 거대한 비행선이 공중해적 도라일당에게 습격받는다. 이 배에는 정부비밀조사기관의 무스카에게 연행되는 중인 소녀 시타가 타고있었고, 도라는 그녀의 비행석(飛行石)을 보석으로 알고 노리고 있었다. 습격의 혼란을 틈타 도망치려는 시타. 배에서 실족하여 추락하지만 비행석의 힘에 의해 보호받으며 지상에 도달한 시타는 탄광촌에서 일하는 견습기계공 파즈의 도움으로 도라 일당과 무스카를 따돌린다. 지하갱도에서 노인을 만나 라퓨타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 파즈는, 시타와 함께 라퓨타를 찾기로 결심한다. 그의 아버지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라퓨타를 찾다가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라퓨타를 추적 중인 무스카에게 시타를 빼앗기고 만다. 무스카로부터 비행석과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 시타는, 서로 협상을 맺은 도라와 파즈의 도움으로 탈출한다. 군대의 뒤를 쫓아 도라와 함께 라퓨타로 향하는 시타와 파즈. 결국 무스카의 수중에 넘어간 라퓨타가 끔찍한 살상을 자행하자, 그 무시무시한 위력을 깨달은 시타는 파멸의 주문을 외우기로 결심한다. 라퓨타의 대붕괴. 그러나 숲이 우거진 그것의 상층부만은 비행석과 함께 먼 우주로 떠나간다. 고대 그리스 양식의 기둥들과 풀밭이 깔린 정원, 오염되지 않은 동식물들, 비석에 꽃을 바치고 새의 알까지 보호하는 로보트 병사가 평화로운 대기를 발산한다. 반면, 하층부에는 라퓨타의 에너지 원천인 중추 비행석과 대학살용 빔무기 장치, 전투형 로보트 병사들의 제조공장과 격납고가 자리하고 있다. 라퓨타의 기능적 이중성은, 그것이 인간들과 관계를 맺을 때 노출되기 시작한다. 전쟁무기가 될지, 또는 보물섬이 될지는 전적으로 그것을 지배하는 자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라퓨타의 이중성에 따라, 미야자키는 인물들까지 세심하게 이중화하거나 대립 배치시키고 있다. 간혹 어떤 면에서는 에서보다 선악의 이분법이 심화되었다는 느낌도 들지만, 라퓨타의 이중성을 강조하는 데에는 여러모로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럼 이 작품에서는 왜 그렇게 라퓨타의 이중적 이미지가 중요시되고 있는 것일까. 이전까지 미야자키에게 있어서 절대적 과학력의 가치는, 처음부터 정치적인 영향력 하에 놓여 있음으로써 부정적인 것으로 결정되어 있었던 반면, 은 그것의 이용주체에 따른 가치변화의 가능성에까지 관심을 돌리고 있다. 따라서 라퓨타라는 첨단과학의 결정체적 존재는, 거신병(물론 만화에서는 이것의 성질도 변화한다)의 경우보다 한층 더 현대 핵위협의 본질에 가까운 기표인 것이다. 또한 이는 인류문화의 이중성과 부조리에 대한 미야자키의 지적이기도 하며, 그러기에 이 작품 속에서 그는 무스카와 군대를 독일 나치처럼 묘사하였고, 그들을 향해 매우 농도 높은 반감과 증오를 던지고 있다. 더욱이 라스트에서는 무스카 일당을 비참한 죽음의 최후 속으로 추락시킨다. 에서 카리오스트로 백작의 죽음을 제외하고는 그의 전작품 속에서 유례 없는 일이다. 미야자키는 라퓨타가 파괴되어 가는 과정에서 그 불합리한 이중성을 해소하고 일관성을 획득하려는 이상주의적 시도를 보여준다. 부정적인 부분으로서의 하층부가 붕괴되어 바다 속으로 산산히 흩어지지만, 긍정적인 부분으로서의 상층부는 무사히 잔존하여 광활한 우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상층부의 우주 진입은, 붕괴와 동시에 수직이탈한 중추 비행석이 라퓨타를 거대하게 감싸고 있던 나무줄기 속에 박혔기 때문인데, 여기에서 나무라는 요소는 미야자키의 영화 속에서 매우 비중 있는 모티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