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의 뜻은 사뇌가(詞腦歌) ·도솔가(兜率歌) 또는 국풍(國風) ·자국지가(自國之歌), 즉 국가(國歌), 신라시대 고유의 노래, 동방 고유의 노래이며, 좁은 뜻으로는 신라의 가요 또는 고향의 노래 등 국문학자들의 여러 해석이 있다. 또한,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의 사뇌격(詞腦格), 《삼국유사》 권2
(2)형성(形成)
삼국사기에 의하면 유리왕 5년 (A.D.28)에 도솔가(도率歌)가 지어진 것이 가악(歌樂)의 시초라고 하였으나, 오늘날 전해지는 신라 가요 6세기 통일 신라 이후의 것들이다. 따라 서, 신라 26대 진평왕(眞平王) 전후(6세기-7세기)부터 시작되어 고려 광종까지 계속되었 던 문학이다.
향가’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광의로는 중국 한시에 대한 우리의 독특한 시가라는 뜻이라고 하겠으나, 협의로는 신라 시대로부터 고려 초기에 이르는 사이에 제작된 향찰로 표기된 시가를 이름이라 하겠다. 따라서 향가라 하면 도솔가나 사뇌가를 포함한 이 시기의 모든 시가의 총칭이었을 것으로 추측
향가이다.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처용이 외출한 사이에 역신이 그 아내를 빼앗은 것을 보고 이 노래를불렀더니 역신이 처용에게 잘못을 빌었다는 내용이다.
당시 시대적 배경과 내용을 서술해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의 일이다.
이 때는 이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여 문화
향가와 고려가요
향가는 신라 가요로서 우리의 문자가 없던 시대에 향찰로 표기된 노래이다. 삼국 통일 이후 신라의 고유한 문화적 성격을 한반도 전역에 확대시키면서, 민족 문학으로서의 개성을 뚜렷이 형상화(形象化)시킨 귀중한 문학적 유산이다. 이 양식은 신라 유리왕(琉璃王) 때의 도솔가에서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 도합 25수이다. 또한 진성여왕 때 각간 위홍은 《삼대목》이라는 향가집을 만들었다고 하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향가의 형식은 사구체·팔구체·십구체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현전 향가 중 4구체는 《서동요》 《헌화가》 《풍요》 《도솔가》가 있으며 8구
시가문학과 비교했을 때 향가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2) 표기법상의 특징
향가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언어가 창제되기 이전에, 중국의 문자를 빌려 ‘향찰’이라는 독특한 표기법을 고안해내어 사용했다. 신라는 중국문학에 흡수되기는커녕 자국문학을 형성시켜나갔다.
삼국시대 이후로 보인다.
③ 백제 ―「정읍사」: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궁중악으로 널리 불렸다. 현존하는 백제의 유일한 노래로 문학성이 뛰어나다.
④ 신라 ―「도솔가」: 최초의 향가로 노래명만 전해진다.
(3) 서사문학
① 고구려
㉠ 대륙적인 씩씩한 기상을 가지고 고도의 중국 문화를 수입,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