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처음으로 <정과정>이 문헌에 알려진 것은 이제현(1287-1367)이 <동국사영>의 하나로 <鄭中丞謫居東萊對月彈琴>을 읊고 별도로 <소악부>에도 올리면서부터이다. 그 뒤로 민사평, 한 수 등의 유수한 고려조 시인들이 잇달아 그 시제를 따라 시를 지었을 정도로 고려조에 이미 <정과정>은 사대부 사이에서
정과정>에 자신의 처지에서 임금에 대한 섭섭함의 감정과 자신의 슬픈 감정을 이입하여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또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궁중에서 향유된 <정과정>은 악기의 편성이 대단위였지만 개인적으로 향유된 <정과정>은 “비파 한 곡조”가 연주되는 악곡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비파 하
"궁중에서 악공을 시취할 때 <삼진작 : 정과정>의 악보를 통하여 했다고 전해지며, 나아가 궁중의 연회석상에서 연행되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있음.
궁중에서 <정과정>은 임금을 위한 노래로서의 역할
향유된 <정과정>은 원망의 정서로 강조되는 두 가지 중 사랑의 절실함만을 강조
‘충’이라는 목
5. <정과정> 의 역사적 배경
1) 작자와 창작 배경
<정과정(鄭瓜亭)> 은 다른 고려가요와는 달리 작자가 명백하게 밝혀져 있는 노래 현전하는 고려가요 가운데 가장 분명하게 작자가 밝혀진 우리말 시가로는 정과정이 유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며,『고려사』 정과정은 內侍郎中 정서(鄭敍)가 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