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삶의 목표이며, 삶의 모든 몸짓은 행복을 향해 가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멋진 말이며 그의 사상이고 그가 이책을 통해 말하려 하는 바가 이 문구 안에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난 후 위의 한문장은 나의 가슴속 깊이 뼈저리게 박히어 들어왔다. 달라이 라마라
사회를 위해 존재해왔다. 그러던 것이 자신의 본래성을 깨달으면서 상황에의 모순, 갈등을 겪게 되었고 자각하게 된 것이다. 기능적인 존재의 형식을 버리고 인간의 본래성에 대해 자각을 하게 되면서 자기 자신의 삶을 가지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그는 사회에서 축출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벌레로
사회의 이방인이 되었다. 필요치 않은 존재 있어도 격리되는 존재이다. 사회에 반항하는 존재이다.
뫼르소의 행동에는 많은 의문이 생긴다. 왜 장례식에 가서 슬퍼하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의 눈은 의식치 않았을까? 삶에 그리고 죽음에 두려움이 없나보다.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드리는 무감각 인간
대한 흥미를 일으키는 상업적인 수단일 것이다.
‘신의 아그네스’는 참으로 단순하지만 복잡한 연극이다. 이 연극에는 세 가지의 갈등이 있는데 그것은 아그네스와 수녀원장, 그리고 정신과 의사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갈등과 아그네스와 매춘부였던 어머니와의 갈등, 그리고 현대에는 기적이
연극 ‘날 보러와요’를 보고....
연극 ‘날 보러와요’를 보았다. 이 연극을 보고 나오는 길에 곧바로 느낀 감정이란 서늘함이었다. 인간에 대한 느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에 나 자신도 놀랄정도였다. 이 연극을 보러 갈때는 예전의 ‘늙은 도둑 이야기’ 생각에 한시간 정도 할 거란 생각을 하
넷이다. 형제들의 성격은 각각 개성이 있는데 그 성격의 상징성이 의미심장하다. 맏형인 드미트리는 무자비하지만 순수한 면을 가졌다는 측면에서 과학적, 합리적 이성이 탄생하기 이전의 인간처럼 보이며, 이반은 냉철한 이성과 분석력의 소유자라는 데서 현대인에 비유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함선의 알 수 없는 해전에 대부분을 할애하여 내용을 알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나름대로는 19세기의 서양사회를 보여주는 영화를 애써서 찾은 것이었는데, 1시간이나 찾은 영화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해 실망이 너무 컸다. 결국 「제르미날」를 보기로 결정, 건너편 동네에까지 가서 빌려다 보았다.
최근 베스트 셀러 중에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스펜서 존슨(Spencer Johnson)박사가 쓴 책입니다. 그는 심리학과 의학을 차례로 공부한 사람으로서 현대인들의 내면과 정신세계를 치유하는 작품들을 펴낸 분입니다. 이 책은 고등학교 동창들이 우화를 서
“...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온 명작동화들에서 보듯 우린 어린시절 동화 속 주인공처럼 살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줄 알고 살아왔다. 명작동화, 전래동화들의 주인공을 우선 살펴보자. 예쁘고 착한 그녀, 힘세고 당당한 그를 주인공으로 설정한다. 그 옛날 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