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 늘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 말은 즉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재에 내가 불행하기에 행복을 계속해서 갈망하는 것이다. 책이 말하는 것처럼 현재에 내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 이제는
있는 여인이 남편을 살리기 위해 들병이로 변모해 의도된 매춘을 하게 되는 비참한 실상을 다루었다. 그런데 <소낙비>에서는 이 같은 여성의 매춘이 남편들에 의해 사주되고, <정조>에서는 술 취한 주인에게 몸을 파는 행랑어멈과 그 대가로 돈을 받기를 원하는 남편이 나온다. 그러나 이들 작품에서 매
있는 듯하다. 나라고 다른 것은 아니다. 내 책장을 빼곡히 메꾸고 있는 다양한 자기 계발서들을 보고 있자면 여전히 행복은 멀게만 느껴질 뿐이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교에 간다면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대학교 졸업 이후에는 대학원 졸업할 때쯤엔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
살 때 간접적으로 항상 납부하는 부가세, 월급을 받거나 통장에 보유하고 있는 재산 등에 직접적으로 부과하는 직접세 등 국가의 세금을 늘려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 누구의 세금을 확대할 것인가(노동자 VS 자본가)에 대해 장단점을 알려주고 있고, 중반부는 세금납부방식에 따라 정부의 형태가 달라
살 수 있는 수준까지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회체제나 복지 제도의 수준은 아직 창의적인 인적 자본을 육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의 동력을 키우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경쟁사회에서 사는 것이 창의성이 자라나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