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학의(실학자 박제가)의 해제
‘북학’이란 말은 맹자가 “진량은 초나라 사람이다. 그는 북쪽으로 중국에 유학하여 북방의 학자들도 그보다 나은 사람이 별로 없다”라고 말 한 것을 박제가가 인용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북학’의 정신은 메마르고 빈곤하였던 조선후기 사회를 구제하려는 것
Ⅰ. 개요
「북학의」는 조선후기 정조때 규장각 검서관으로 문명을 떨친 초정 박제가가 29세 때 지은 저술로서, 내외편과 진북학의소(進北學議疏)로 구성되어 있는 특유한 실학서적이다. 이 책은 주로 우리 나라 경제 문제의 개선방안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일찌기 연암 박지원의 문하에서 실
북학의」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그가 경세제민을 위해 연구하고 견문한 것을 적은 귀중한 자료이다.
그는 평생동안 서자 출신이란 신분적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서얼이라는 신분제한이 빚은 사회적인 차별 대우는 그로 하여금 봉건적인 신분제도에 반대하고 농민과 상공인에게
18세기의 실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북학의』를 읽지 않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당시의 상공업 발달과 더불어 청나라의 학문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이용후생파 중 한 사람인 박제가의 주장을 잘 나타내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용덕 선생님은 겨레를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모
'북학의'의 핵심 내용
박제가는 4차례 중국을 다녀오는 등 중국을 배우고자 했으니, 그 대표적인 저술이 1차 중국 기행 후 1778년 저술한 '북학의'이다. '북학의'는 내편과 외편으로 되어있는데, 내편에는 수례, 배, 성, 벽돌, 도로, 상업, 종이 등 39항목이 있고, 외편에는 밭, 거름, 과거론, 북학변, 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