交遊)한다.
1936년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등과 <시인부락>을 창간(創刊), 2호(號)까지 계속된 <시인부락>에 시작(詩作)을 발표한다.
1936년말이 아니면 1937년경 궁핍한 가정사정으로 중앙불전(中央佛專)을 그만두고 만주 원문(圓們)으로 가 소학교 훈도시험(訓導試驗)에 합격하여 소학교 교사가 된다. 그러
交遊)한다. 그러나 영정혁신(永貞革新)에 실패하여 영주에서 유배지내면서 사망하게 되는데, 이 유배지에서 그의 작품 중 대다수가 만들어진다.
유종원의 정치경향: 유종원은 중당(中唐)시기 사람이므로 그 시기에는 관료들이 부패하고 사회 질서가 문란하여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交遊)하도록 하고, 그 행의(行義)를 살펴 등용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우선 미녀 2명을 뽑았는데, 남모(南毛)와 준정(俊貞)이었다. 두 여자는 3백여 명의 무리를 모았는데, 서로 질투 끝에 싸우기 시작했다. 준정이 먼저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해 취하도록 술을 강권한 다음 끌어다 강물에 던져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