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여 1898년에 간행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공자를 혁신의 선구자로 삼고, 공자가 ≪육경(六經)≫을 지은 목적은 요순(堯舜)과 같은 고대 성군의 말을 빌려 당시의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즉 그는 여기에서 공자의 이름을 빌어 변법의 정당성을 증명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六經:詩·書·禮·樂·易·春秋)을 제자에게 가르치며 도리(道理)를 후세에 전하였다. 선진시대(先秦時代)에 이르러 유학은 도덕 실천의 학으로서 크게 일어났으나, 시황제(始皇帝)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큰 시련을 겪은 다음 한·당 대(漢唐代)에는 경전(經典)을 수집·정리하고, 그 자구(字句)에 대한 주
六經)·제자사(諸子史) 등의 책을 구입하여 유학진흥에 큰 공적을 남기기도 하였고, 밀직부사치사 이산과 전법판서 이진을 천거하여 경사교수 도감사로 임명케 하여 교사하게 함으로써 유학이 크게 떨치게 되어 안향은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 지칭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는 이제까지 위축
六經:詩·書·禮·樂·易·春秋)을 제자에게 가르치며 도리(道理)를 후세에 전하였다. 선진시대(先秦時代)에 이르러 유학은 도덕 실천의 학으로서 크게 일어났으나, 시황제(始皇帝)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큰 시련을 겪은 다음 한·당 대(漢唐代)에는 경전(經典)을 수집·정리하고, 그 자구(字句)에 대한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