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역사에 대한 관심은 곧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우리에 대한 나아가 시대에 대한 관심이라 고 할 수 있다. 역사를 그저 과거의 것으로 치부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한 개인이건 국가이건 간에 발전을 거듭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 는 역
.선정전 (宣政殿: 보물 814호)
임금이 평소에 국사를 논의하던 편전(便殿)이다.
임금은 일월오악도를 배경으로 중앙에 앉고 그 좌우로 문관과 무관이 자리잡으며 한쪽에서는 사관(史官)이 앉아 국사에 대한 논의를 세세히 기록하였다. 사관들의 기록을 사초(史草)라고도 하며 이를 토대로 실록을 편찬
史草) - 사관이 쓴 기록. 왕과 신하들의 국사 논의 및 처리기록과 그 잘잘못, 인물에 대한 평가, 기밀사무 등.
그 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관상감일기(觀象監日記), 내의원일기(內醫院日記), 정부기관기록, 개인문집, 지방관청 기록이나 민간 구전 혹은 야사까지 광범위하게 수집
3. 실록의 편찬과정(1)
죽산(竹山)으로 부처(付處)된 뒤 세자와의 인연이 끊겼다. 1425년에는 보관하던 사초(史草)를 불태워 자손금고(子孫禁錮)의 처분이 가중되는 등 자손들의 벼슬길도 막혔다. 뒤에 신원되어 좌의정이 추증되었다.
■ 세종 47권 12년 2월 28일 (기해) 002 / 의금부에 명하여 갇힌 김씨를 놓아 주게 하다.
, 왕의 언행, 백관의 잘잘못, 사회상 등을 기록하여 후세에 정치를 하는 데 거울로 삼게 하려는 것으로 사관이 기록한 사초는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또한 수정도 가하지 못하며 사관의 기록 행위도 일종의 면책권이 있어 신분이 보장되었다. <후략> 1)
사초 [史草] 공식적 역사편찬의 자료가 되는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