啓蒙傳疑)>등의 책을 내놓았다.
이황의 제자들은 뒷날 영남 학파를 이루었고, 이 영남 학파는 율곡 이이의 학통을 이어받은 기호 학파와 함께 우리 나라 유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황의 학문과 인품은 우리 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까지 그 이름을 떨쳤고 중종·명종·선조의 지극
啓蒙傳疑),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송계원명이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
3) 서원교육운동(書院敎育運動): 이를 주창함으로써 다음 단계의 사회발전을 미리 준비한 통찰력을 보여줌. 퇴계는 서원을 운영함에 있어 자율적 통제를 원칙으로 내세워 국가권력이 교육과 학문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시켰음
啓蒙傳疑)>, <전습록논변(傳習錄錄辨)>, <경서석의(經書釋義)>, <심경후론(心經後論)> 등의 저술을 남겼다. 유묵(遺墨)으로 <퇴계필적(退溪筆迹)>과 <퇴도선생유첩(退陶先生遺帖)>도 전해진다. 그의 저술들은 1958년 대동문화연구원에 의해 <퇴계전서(退溪全書)>로 편찬되었다.
의 철학 사상 중에서 가장 중
啓蒙傳疑)》,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송계원명이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 《인심경석의(人心經釋疑)》 및 기대승(奇大升)과 문답한 《사단칠정분리기서(四端七情分理氣書)》와 같은 것은 그의 대표적인 명저이다.그가 죽자 선조는 시호를 내리고 영의정을 추증하였으며, 1610년(광해군 2)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1574년에 이황의 제자들이 그보다 4년 앞서 세상을 떠난 이황의 학덕을 기르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도산서원의 위치는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680번지에 위치하여 있다. 본래 이 자리는 이황이 은거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이 있던 곳인데, 지금은 안동댐의 건설로 인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