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邑(국읍)으로서 정치적 治所(치소)가 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斯盧國(사로국)이 六村(대촌)으로 구성되고 駕洛國(가락국)이 九村(구촌)으로 구성된 데서 입증이 된다.
소국을 구성한 읍락들은
其俗重山川(기속중산천) 山川各有部分(산천각유부분) 不得妄相涉入(부득망상섭입)
에서 보듯이
Ⅰ. 머리말
삼한사회를 구성한 단위 정치체가 國이며, 國은 國邑과 邑洛으로 구성되었다는 점, 국읍은 여타의 읍락과 등질적인 상태에서 출발하였으며 점차 읍락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시켜나갔다는게 통설이다.
이번 논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은 국의 단위정치체제로서의 기능과 그것을 가
가야의 성립
1. 가야의 풍토와 지리
가야 계통 소국들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이 늘 일정했던 것은 아니나, 비교적 오랫동안 근거지로 삼았던 곳은 낙동강 및 그 지류인 남강 유역 일대라 할 수 있다. 이 지역은 외부와의 교통여건으로 보아 서쪽 및 북쪽으로는 지세가 험하여 거의 막혀있는 형세이며, 동
백제 중앙통치조직의 핵심은 관등제, 관부관직제 및 귀족회의체라고 볼 수 있다. 이 세 체계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면서 국가 운영의 기본 틀로서 작용하였다. 또한 중앙통치조직은 도읍이 바뀌거나, 세력균형이 변화하는 등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여러 차례 변화하였다.
1)관등제
고이왕 대에 들어와
19세기 말 L.H.모건은 원시사회가 씨족 ·포족(胞族) ·부족 ·부족동맹으로 발전한다는 학설을 제기하였다. 그 결과 원초적인 국가형태의 기저에 있는 친족 ·씨족과 같은 혈연집단의 구조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리하여 사회형태를 혈연적인 구조와 기능에서 성립하는 것과 재산 ·지역이라는 물적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