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품문(小品文)으로서의 척독산문
1.1. 조선후기 소품문(小品文)의 유행
조선후기는 산문(散文) 문체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 시기였다. 기존의 조선사회는 중세문화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적 가치를 담고 있는 고문(古文)을 중시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조선 중기 이후 당송고문(唐
尺牘) – 발문
“단사척언(單詞隻言)으로 이치의 핵심을 곧장 깨뜨려, 사람의 뜻을 꺾어 굴복시키면서도 뜻은 말 밖에 있는 것.”
<與權汝章 庚戌五月>
兄在江都時,歲再至洛下,則輒留連於鄙邸,杯酒酬唱極,樂事人間.
及盡室抵京,則無旬日從容,反不如江都之日,抑何故耶?
塘波方漲,柳陰正濃,
尺牘)>, <삼경문변(三經問辨)>이 있다.
Ⅱ. 실학자(실학사상) 홍대용의 생애
홍대용은 1731년(영조 7년) 충청도 천원군 수신면 장산리에서 아버지 홍력(洪櫟)과 청풍 김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홍대용의 가문은 선대는 남양(南陽)에서 나서 고려조에 이름을 떨친 금오공으로부터 정효공파로
Ⅰ. 서 론
연암 박지원은 조선후기 실학자로서 열하일기 작품이 연상된다. 그는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이자 사상가, 외교관, 소설가이다. 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고,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1765년 처음 과거에 응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