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도 중세사회의 모순이 터져 나오던 시기였으면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과도기였다. 재편되는 사회질서 속에서, 성리학에 대한 자생적 비판과 외국 문물의 전래를 통해 지식 영역이 한껏 확대되고 과학적, 합리적 사고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넓은 세계관이 형
. 그는 이동 선생이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 수백 리 길을 걸어가서 배웠는데 이 배움은 그의 사상의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그 후로 그는 오직 학문 연구에 몰두하여 1168년부터 1174년 사이에 『논맹정의(論孟精義)』·『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서명해의(西銘解義)』 등 많은 책을 저술하였다.
心性合一之圖)>에 나타난다. 그러나 사단과 칠정에 대한 이기론적 해석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은 정지운(鄭之雲)의 《천명도설(天命圖說)》을 이황이 수정, 개작한 데서 비롯된다. 정지운은 <사단은 이에서 발현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현한다(四端發於理, 七靑發於氣)>고 하였는
心性合一之圖)>에 나타난다. 그러나 사단과 칠정에 대한 이기론적 해석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은 정지운(鄭之雲)의 《천명도설(天命圖說)》을 이황이 수정, 개작한 데서 비롯된다. 정지운은 <사단은 이에서 발현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현한다(四端發於理, 七靑發於氣)>고 하였는
전의 서양 심리학의 입장이고, 주체성을 강조하고 人間本然의 바탕(性)을 연구한 것은 기원전 500년 전의 孔子의 心性論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니 人性의 문제는 동양 사상이 깔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하고 그 의미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인성의 교육문제 또한 수많은 접근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