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趙光祖
1482(성종 13) ~ 1519(중종 1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한성출생.
개국공신 온(溫)의 5대손으로, 감찰 원강(元綱)의 아들이다. 17세 때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가, 오사화로 화를 입고 회천에 유배 중이던 김굉필(金
② 방랑기 (放浪期) : 21~30세
삼각산 중흥사에서 독서하고 있을 때, 단종이 유충으로서 등극하였다가 곧 세조에게 찬찬을 당하였다는 소문을 들은 21세인 시습은 대성통곡하면서 서적을 모두 불살라 버리고는, 머리를 깎아 중이 되어 금강산에 들어가서 「오세암」이란 암자를 지어놓고 거처하면서
당나라에서의 활동
당나라에 유학한 지 7년 만인 874년에 18세의 나이로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2년간 낙양(洛陽)을 유랑하면서 시작(詩作)에 몰두하였는데, 그때 지은 작품이 『금체시(今體詩) 5수 1권』, 『오언칠언금체시(五言七言今體詩) 100수 1권』, 『잡시부(雜詩賦) 30수 1권』등
文集)』, 『송도기이(松都記異)』,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 등에 전해진다. 이 문헌들에 나타나는 황진이의 출생 배경은 황진사의 서녀라는 설과 맹녀의 딸이라는 설로 나뉜다.
1) 황진사의 서녀로 묘사 : 『송도기이(松都記異)』, 『중경지(中京誌)』, 『소호담문집(韶護堂文集)』
황진이의 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