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역사경관이 도시적 특성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斯盧六村이 발전하여 斯盧國을 형성하고부터 이다. 이들은 혈연공동체인 씨족국가로서 주변의 辰韓 小國들과 대항하기 위하여 모여 살게 되었고 도시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경주시 역사경관의 모체가 되었다.
신라는 국가 開創
머리말
후대 명실상부한 고대국가로 발전한 신라는 경주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斯盧國을 모태로 시작한다. 이 사로국은 삼국사기 등에 따르면 (斯盧)六村을 기반으로 건국되었다. 여기서는 그 다음 단계인 사로국 형성기 왕실인 박혁거세와 석탈해 集團 등의 출자와 사회적 성격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
(斯盧)의 6부(六部) 중
알천양산촌(閼川陽山寸)을 다스렸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서기 32년(신라 유리왕
9년) 유리왕이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께 사성하여 양산촌을 급량부로 개칭하고 그에게 이씨
의 성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그 후 후손들은 알평의 36세손으로 신라 진골 출신인 거명을
(斯盧)의 6부(六部) 중
알천양산촌(閼川陽山寸)을 다스렸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서기 32년(신라 유리왕
9년) 유리왕이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께 사성하여 양산촌을 급량부로 개칭하고 그에게 이씨
의 성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그 후 후손들은 알평의 36세손으로 신라 진골 출신인 거명을
斯盧國의 진한 통합 노력을 통해서 4세기 초에 이르러 新羅라는 국호를 성립시키게 된다. 『삼국사기』 基臨尼師今 10年(309)條 : 復國號新羅
4세기 이전의 외교관계가 ‘辰韓’이라는 세력의 이름으로 전개되었다면, 4세기 이후는 신 국가 신라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삼국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