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여명기(黎明期)는 멀리 기원을 전후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민족의 경우이거나 문학은 시가(詩歌)와 무용과 음악이 한데 어울린 종합적인 원시예술의 형태로 발생하였음을 본다.
한국의 경우도 옛 기록에 나타나는 부여의 영고(迎鼓), 동예의 무천(舞天), 고구려의 동맹(東盟),
溟州)》 등 세 곡이 비록 사(詞)는 없이 해제(解題)만 남아 있으나, 이는 당악(唐樂)이 아닌 국악에 관한 가사로서 고구려 문학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는 지배 체제가 정비되어 가면서 상층의 문화와 하층의 문화가 분리되었다. 상층의 문화로 악(樂)이 생겨났다. 시(詩), 가(歌), 무(舞)의 종합적
溟州) 등의 군현으로 삭방도(朔方道)를 설치함에 따라 영동과 영서 일대가 이에 편입되었다. 1178년(명종 8)에는 삭방도를 폐하고 함경도와 강릉 일대를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 춘천 철원 일대를 동주도(東州道)라고 했다. 1263년(원종 4) 연해명주도는 강릉도(江陵道), 동주도는 교주도(交州道)로 개칭했
), 하서주(河西州), 명주(溟州)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통일신라시대 「강원도 행정구역도」를 참고해 보면 9주 5소경 중 명주(溟州)의 속군(屬郡), 속현(屬縣)에 영동지방은 물론, 지금의 영서지방에 속하는 평창군, 정선군 그리고 태백시와 현재 경상북도에 속한 울진, 평해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溟州 : 지금의 강릉)에 유학한 일이 있고 대관령산신에게서 검술을 배웠으며 죽어서 산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나 ≪임영지≫의 ‘승속이신’ 등의 내용을 보면, 대관령산신은 김유신 하나가 아니고 그 이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만, 대관령산신으로 중요하게 간주되는 것은 김유신이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