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일종의 유형(流刑)이었다. 황주에서의 생활은 매우 비참했다. 부인은 양잠을 했고, 그는 본래 병영이었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이 땅을 동파(동쪽 언덕)라 이름 짓고 스스로를 동파거사라고 칭했는데, 그의 호는 여기서 유래한다. 그 유명한 〈적벽부 赤壁賦〉가 지어진 것도 이곳에서였다.
후적벽부(後赤壁賦)-소식(蘇軾)
是歲十月之望(시세십월지망)에 : 그 해 시월 기망에
步自雪堂(보자설당)하여 : 설당에서 걸어나와
將歸於臨皐(장귀어임고)할새 : 임고정(臨皐亭)으로 돌아가려는데
二客從予(이객종여)라 : 두 손님이 나를 따라 왔다
過黃泥之坂(과황니지판)하니 : 황니 고개를 지나는
적벽에 배 띄우고 노세나- 소식과 송나라의 산문
소식蘇軾
중국 북송 때의 시인.
호 동파거사(東坡居士)
본명 소식(蘇軾)
별칭 자 자첨(子瞻), 애칭(愛稱) 파공(坡公) ·파선(坡仙)
국적 중국 북송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메이산[眉山:지금의 四川省]
주요작품 《적벽부(赤壁賦)》
본문
메이산[
赤壁賦)>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알려졌다.
작품설명
배경
송나라 원풍5년(1082) 가을 7월 16일의 달 밝은 밤에 소동파가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며 삼국의 영웅인 조조와 주유의 풍류에 비겨 자신의 덧없는 존재라는 것과 무한한 본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만물이 다 같은 것임을 깨닫고 시름을 잊는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