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구검(刻舟求劍)
刻:새길 각. 舟:배 주. 求:구할 구. 劍:칼 검.
[준말]각주(刻舟),각선(脚線),각현(刻鉉)
[유사어]수주대토(守株待兎)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표시를 했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으로, 어리석어 시세에 어둡거나 완고함의 비유.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駙馬)가 되고 창성 부원군 (昌城府院君)에 봉(封)하게되니 이분이 곧 우리의 시조이시다.
우리 시조가 탄생과정부터 기이할 뿐 아니라 임금의 사위가 될만큼 그 용모와 덕망이 탁월하시었고 문무가 겸비하여 나라에 지대한 공을 세우신 분으로서 전하는 글에 의하면 일찍이 왜구가 동래를 침범 했을 때
駙馬國·사위의 나라)이었던 고려 말기 몽골어에서 전해진 말이라고 한다. 궁중의 일상식에 대한 문헌 자료는 연회식 자료보다 훨씬 부족한 형편이라 실제로 어떤 임금이 무엇을 들었는지는 거의 알 수 없다. 궁중의 일상식을 전해주는 문헌으로는 유일하게‘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가
駙馬) 같았다. 그는 용전여수(用錢如水)하면서 여숙을 남대문 안 월편 패밀리호텔에 정하고 있었다. 당시의 패밀리호텔이란 서양 사람들만 유숙하고 있는 고급 호텔로서 조선호텔에 못지아니한 고급 호텔이다.
그는 밤에는 명월관에서 기생 수십 명씩을 옹위시켜 밤새도록 호유(豪遊)하고, 낮에는 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