鷄林市의 西北쪽에 위치해 있으며 시내 중심에서 5㎞ 떨어져 있다. 1959 년 근처의 한 농부에 의하여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길이는 세계최장으로 약 2Km이고, 깊이가 240m, 약 500m정도만 일반에게 공개된다. 鷄林에서 가장 볼만한 곳으로 中國내에서도 손꼽히는 동굴이다. 蘆笛岩이란 이름은 장로초를 이용
鷄林類事)』나,『조선관역어(朝鮮館譯語)』정도 뿐이었다. 그러나 1973년『구역인왕경(舊譯仁王經)』권상(5장)이 발견되면서 부 터 1990년대 초반에『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권14『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권20,『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권35,『금광명경(金光明經)』권3 등의
삼국유사 天龍寺 조에는 鷄林 경내에는 客水 두 줄기와 逆水 한 줄기가 있는데 이들의 근원지인 천룡사가 이를 조화시켜서 국운을 지키는 裨補寺刹의 구실을 한다는 내용 등을 증거로 들어 사무구시대 초기에 풍수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보았다. 金光彦, 韓國의 住居民俗誌, 民音社, 1988. p.21.
鷄林路) 30호분에서 출토된 5~6세기경의 토우장식(土偶裝飾) 장경호(長頸壺)에 붙은 토우로 된 가야금(伽倻琴)과 일본(日本) 정창원(正倉院) 소재 신라금(新羅琴)이 있다.
한편 실을 생산하는 방추차와 실감기, 베를 촘촘하게 짜여지도록 위에서 당겨 압력을 가하는데 쓰이는 바디(위타구) 등 천을 짜는데
鷄林雜傳)등 많은 저서가 있지만 지금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저술할 때 많이 사용되었다. 김대문은 신라문화만 집중적으로 다루고, 국왕 중심의 역사가 아닌 진골귀족의 역사를 중요시하고, 유학을 받아들이기 전부터 있었던 전통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전제왕권에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