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경도감 등
훈민정음을 정책적으로 창제하고 보급하는 과정에는 집현전, 언문청, 정음청, 의사청, 간경도감 등 다양한 기관들이 동원되었다. 마치 한편의 광고가 제작되고 보급되는 과정처럼 완벽한 홍보학적 카테고리와 구성적 틀을 갖추고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기관은 집현
간경도감에서 불경을 간행하고 불교비판을 금압하였다. 이는 왕위찬탈에 반대한 유신들의 절의사상을 완화시키고 자신의 집권을 불교의 운명론으로 합리화하려고 했다는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 유신세력의 불교배척 확립
예종이 즉위후 1년만에 죽고 성종이 즉위하는 동안 유신세력은 간경도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문헌에서부터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 「월인석보」가 간행될 때까지의 15년간만 그 명맥을 유지한 것이다. 이렇게 ㅸ이 창제 된 후 얼마 안 있어 사라진 것으로 보아 [β]가 소멸되는 단계에 훈민정음이 창제된 것으로 보인다. 「용비어천가」의 이ᝂ
평가되고 있다.
이 문헌의 특징은 세조 연간에 간행된 훈민정음 문헌으로서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 중 일부 운서(韻書)를 제외하고는 모두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나온 불경 언해류인데 반하여 유일하게 불교와 관계가 없는 책이고, 또 의약서 언해 중 최초의 문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책의
간경도감에서 발간한 책이다. 이판본은 현재 보물 제 771호로 지정된 서울대학교 도서관본과 동일한 책이나 이곳에 없는 [그림 1] 반야바라다밀다심경 전이 붙어 있고 교정인이 찍혀 있으며 보전상태는 보다 양호하다. 불교문화재로서 뿐만 아니라 서지학 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송서(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