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업은 미국과 캐나다 아일랜드 독일 등을 선교지로 봉사하면서 해외선교를 강화하였고, 곳곳마다 신앙그룹을 형성하도록 고무하였다. 영국의 노동조합의 출발은 바로 감리교회의 속회조직을 본떠 만든 것이며, 실제로 감리교인이 대부분이었다. 나아가 탄광과 교도소를 방문하도록 조직시켰으
선교사로 자원하여 - 동양언어 배움.
* 황실장학금으로 "베르린" 신학교 졸업 (1821).
* 의술 까지 연마.
* 목사안수 (1826. 7. 20).
* 1829. 런던 전도협회 소속으로 - 천진 도착 (기독교 서적. 약품).
* 홍콩에서 중국인 선교사 양성, 많은 서적 남김.
(3) 토마스목사의 처음 순
일을 위해 뉴캐슬에 고아원을 설립하였다. 감리교회의 교회학교는 가난한 아이들과 버려진 아이들로 형성되었다. 또한 어린이집 사업은 정상적인 아이들뿐만 아니라 정신박약아나 장애어린이들을 위한 특수학교로도 운영하고 있었다. 어린이집은 영국 감리교회의 대표적인 사회봉사사업이었다.
< 해방과 새로운 출발 >
1. 해방과 교회 재건(1945~1949)
1) 기독교조선남부대회 - 감리교, 장로교 교단 환원
a. 조선기독교단 남부대회
해방당시 유일하게 존재하던 교단은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이었다.
이 교단은 해방직전인 1945년 7월 19~20일 종교통합 정책에 의해 조직되어 8월 8일부터 전국에 교
감리교회가 진정한 한국 교회가 되도록 하는 데 있어서 성경, 전통, 체험, 이성과 더불어 한국의 문화를 중시하는 신학의 수립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이는 진정으로 복음적이며 한국적인 찬송가를 짓는 과제를 비롯하여 한국 감리교회의 예배, 신조, 영성, 선교와 같은 구체적인 신앙생활의 전 영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