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이해-해방과 새로운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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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해방과 새로운 출발 >

1. 해방과 교회 재건(1945~1949)

1) 기독교조선남부대회 - 감리교, 장로교 교단 환원

2) 교회의 재건

3) 선교사의 입국

4) 신학교의 재건
본문내용
< 해방과 새로운 출발 >

1. 해방과 교회 재건(1945~1949)

1) 기독교조선남부대회 - 감리교, 장로교 교단 환원
a. 조선기독교단 남부대회
해방당시 유일하게 존재하던 교단은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이었다.
이 교단은 해방직전인 1945년 7월 19~20일 종교통합 정책에 의해 조직되어 8월 8일부터 전국에 교구를 조직했다.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의 임원들은 교단의 명칭을 '조선기독교단'으로 바꾼 뒤 서울에서 남부대회(1945. 9. 8.)를 소집했다.
그러나 개회 벽두부터 수십 명의 감리교 지도자들이 감리교회 재건을 선언하고 퇴장함으로써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b. 제1차 남부대회 (1945. 11. 27~30)
서울의 정동제일교회에서 기독교조선남부대회가 다시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회장 김관식, 부회장 김영섭 등 임원진을 선출한 후 일제강점기 순교자에 대한 추도회를 갖고,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남부대회는 선교사 내한을 요청하고 38도선 문제의 해결과 자주 독립을 위해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진정하기로 하는 등 여러 가지 사업을 결의했다.
또 교회신문인 '기독교 공보'를 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남부대회는 안팎으로부터 도전과 난관에 직면했다.
9월 새문안교회 모임에서 퇴장했던 감리교 지도자들의 재건 선언은 남부대회의 진로에 큰 장애가 되었다.
장로교에서도 기존의 장로교 체제로 환원하려는 움직임이 노골화되면서 지방에서 노회를 재건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결국 1945년 11월 경남노회가 재건되었고 12월에는 전북노회가 재건되었다.
통일의 여망 때문에 남한교회만의 조직인 남부대회가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도 어려웠다.
해방 직후 월남한 이북 출신 교역자들도 남쪽 교회만의 총회 구성을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남부대회는 친일교단 잔존 세력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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